러시아발 에너지 대란으로 유럽의 제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12일(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에너지 가격 급등에 철강과 같은 에너지 집약공정 산업을 비롯 많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거나 폐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그 중 일부는 공장 가동을 영영 재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슬로바키아 최대 알루미늄 생산업체로 손 꼽히는 슬로발코도 그중 한 곳이다.

밀란 베슬리 슬로발코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생산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300∼450명가량의 근로자에 대한 해고 절차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슬로발코는 아예 내년도 전력 구매 계약 체결도 포기했다.

통상 공장들은 전년도 가격을 기준으로 이듬해 전력 구매 계약을 미리 체결하는데, 올해 에너지 가격 급등에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이 회사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본격화하기 이전에는 전기세로 1MWh당 45유로 정도를 지출했다. 올해는 작년 가격 기준 1MWh당 75유로를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8월 말 기준 유럽 전역에서 1MWh당 가격은 1천 유로를 넘어서며 10배 이상 폭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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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https://images.app.goo.gl/MfXttSMmrASjARyi9 )

이와같은 전기세 폭등은 천연가스 가격폭등이 주 원인이다. 가정용 전기료는 각국 정부가 나서서 통제를 하고 있어서 그나마 나은 편이다.

노르웨이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비료업체 '야라 인터내셔널'도 가스를 원료로 주로 사용하지만, 유럽 전역에서 암모니아 생산을 65%가량 줄였다.

이와같은 비료생산 비용 증가 및 생산감소는 곡물가 상승과 사료비 상승으로 이어져 다른 산업으로 파급된다. 

이 밖에도 자동차 업계를 비롯해 유리, 설탕 제조업을 비롯해 심지어는 두루마리 휴지 제조업체까지 천연가스와 전기세 폭등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유럽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감축(혹은 중단)에 이미 수입 대체 방안을 찾고 있다. 그러나 대안 공급처를 찾더라도, 자원 부국인 미국과 경쟁하는 한편 높은 인건비 및 엄격한 노동법과 환경 규제를 상쇄하는 데 도움을 줬던 예전의 '값싼' 러시아산 가스는 두 번 다시 공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특히 유럽 경제가 지난 수십 년간 제조업과 중공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있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충격파가 더 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은행 리베룸의 톰 프라이스는 유럽의 상황을 에너지 가격 급등에 알루미늄 산업이 와해한 1970년대 일본 상황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의 산업 기반은 러시아의 값싼 에너지 공급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졌다"며 "그러나 (값싼 에너지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