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개월간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 최격전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가 막대한 희생 끝에 승리를 선언했지만, 전략적 관점에선 오히려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폐허가 되어버린 바흐무트 점령이 전략적 가치가 크지 않을 뿐더러,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얻은 상징적 승리임을 선전한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앞두고 전략적 가치를 상실한 바흐무트에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과 탄약을 밀어넣지 않을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참혹했던 바흐무트에서 "러시아의 바흐무트 점령은 러시아 정부에게는 강력한 상징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바흐무트

(전쟁 전후의 바흐무트 위성사진)

NYT에 따르면, 실제로 러시아 국영 TV 방송과 친(親)크렘린계 신문들은 바흐무트에서의 승전 소식을 전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바흐무트를 점령한다고 전쟁의 향방이 바뀌는 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교통의 요지로 돈바스 점령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전략적 가치도 우크라이나군이 바흐무트 함락에 대비해 주변에 겹겹의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빛이 바랜 실정이다.

NYT는 "폐허가 된 이 도시를 손에 넣는다고 해도 돈바스 전역을 정복한다는 러시아의 목표에 반드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내외적으로 점령 사실을 선전한 만큼 이후 바흐무트에서의 상황이 악화해도 쉽게 병력을 뺄 수 없게 됐다는 점도 러시아군 입장에선 난감한 대목이다.

전략적 가치가 크지 않은 바흐무트에 러시아군의 발이 묶인 사이 다른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이른바 '대반격' 작전이 개시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지휘관들은 바흐무트 전선에서 자신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러시아군을 붙들고 소모전을 하게 만들어 손실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제 무기로 무장하고 반격에 나설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고 말해왔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 입장에선 우크라이나군의 대규모 반격에 대응할 능력이 약화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바흐무트 방어를 위해 증원군을 계속 투입할 수밖에 없는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한편 지난 20일 바흐무트 점령을 선언한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은 승리의 공을 정규군에게 돌리는 군 수뇌부를 비판하며 25일 러시아 정규군에 이곳을 넘기고 철수할 것이라 했다. 

실제로 바흐무트 전투에서 큰 역할을 했으나 러시아군 지휘부와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워 온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이름을 언급한 매체도 거의 없었다.

NYT는 이에 대해 "러시아 선전도구들이 자국민들에게 엘리트층의 내분과 전선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얼마나 숨기고 싶어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