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4 06:24 AM
고은 시인, 시카고 팬들 눈과 귀 사로잡아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 고은(81)이 영어권 최초의 시(詩) 전문 월간지 '포이트리'(Poetry)를 발행하는 '포이트리 재단' 초청으로 미국 시카고 팬들과 만났다.
고은 시인은 2일(현지시간) 밤 시카고 도심의 해롤드 워싱턴 도서관에서 시 낭송회와 작품 설명회를 열고 영문 시집 사인회 행사도 가졌다.
400석 규모의 관내 공연장 신디프리츠커홀은 '포이트리' 동인들과 전문 시인들로부터 젊은 문학도, 어린 자녀를 데리고 참석한 문학팬, 한인사회 인사 등으로 가득 찼다.
포이트리 재단의 프로그램 디렉터 시드니 영은 "2006년 (뉴저지에서 열린) '다지 포이트리 페스티벌'에서 고은 시인의 시낭송을 접하고 시카고에도 꼭 초청하고 싶었다"며 "고은의 시는 불교적 명상이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과 결합된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고 소개했다.
옅은 회색 양복 상의에 중절모를 쓰고 무대에 오른 고은 시인은 "이 방처럼 아름다운 시를 한 편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라고 운을 뗀 뒤 "한국에서는 가까운 사이에 마음을 이해할 때 '소리를 안다'고 합니다. 여러분께 제소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가슴 속의 소리를 제게 보내주십시오"라고 인사를 대신했다.
고은 시인은 선시집 '뭐냐'에 수록된 '메아리'와 '산을 내려오며'로 시낭송을 시작했다.
1시간 30분에 걸쳐 '햇볕' '히말라야 이후' '일인칭은 슬프다' '두고 온 시' '어떤 기쁨' 등 약 30편의 시가 낭송됐다. 시인의 해학과 기지에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고은 시인은 '나의 시' 낭송 전에는 "포이트리 재단에 보내는 내 고백이기도 하다"며 "한국 사람들은 '새가 노래한다'고 하지 않고 '새가 운다'고 말한다. 귀뚜라미도 송아지도 모두 마찬가지다. 나의 시도 그렇게 울고 있다"고 설명했다.
7세 9세 두 자녀를 데리고 행사에 참석한 케이 프로스트는 "삶의 지혜, 인간 존재, 평화 등 우리가 찾고 있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고은의 시를 좋아한다"며 "아이들에게도 고은의 시를 읽어준다. 딸은 '아이들'이란 시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다는 프렘 존슨은 "너무나 아름답다. 풍부한 감성으로 노래하고 연극하는 듯한 그의 시낭송을 들으면서 때때로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해롤드 워싱턴 도서관의 프로그램 디렉터 크레그 데이비스는 "한국의 고급문화를 소개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기회가 됐을 것"며 "고은 시인의 시낭송은 언어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는 일리노이주 전문직 한인들이 주축이 돼 만든 비영리 문화단체 '세종문화회'의 주선으로 성사됐으며 한국문학번역원과 시카고 한국 총영사관, 시카고 서울대동창회 등이 후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