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9 09:13 PM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고액 상품권 발행량이 1년 새 2배로 불어나는 등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50만원권은 4년새 9배로 폭증했다.
5만원권 환수율이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가운데 구매자나 사용자가 누군지 파악할 수 없는 고액상품권 발행량 증가는 지하경제가 확대되는 신호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마트·백화점 등 유통사가 발행한 30만원·50만원 상품권은 478만장으로 1년 전(227만장)보다 110.6% 증가했다.
특히 액면가 50만원의 고액 상품권은 365만4천만장 발행돼 전년(157만4천만장)보다 132.1% 늘었다. 30만원짜리 상품권 발행량(112만6천장)은 62.0% 증가했다.
50만원짜리 상품권은 2009년만 해도 연간 42만1천장이 발행됐지만, 그 규모가 4년 만에 9배 가까이로 늘었다. 30만원짜리 상품권 발행 규모도 5.3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5만원짜리 상품권 발행량은 2.1배로, 10만원은 2.0배로 늘어난 것과 비교되는 증가세다.
백화점·대형마트 상품권은 전체 상품권 발행량 증가를 주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정유사, 전통시장 등을 포함한 전체 상품권 발행량은 전년보다 22.6% 증가한 2억6천만장이었다. 금액으로는 8조3천억원어치다.
기업들 입장에서 상품권 발행은 자금을 미리 끌어다 쓸 수 있는데다 신규 매출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는 '효자'다. 사용되지 않아 이익을 남기는 때도 있다. 내수 경기가 좀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는 가운데 고액상품권 발행이 급증하는 이유다.
고객들로선 상품권의 용처가 갈수록 확대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데다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통시장 온누리 상품권의 경우 액면가보다 5%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문제는 5만원권 화폐보다 액면가가 훨씬 높은 고액상품권을 누가 구매하고 누가 어떻게 쓰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리베이트, 기업 비자금 조성, 뇌물 등 불투명한 자금 거래에 쓰일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1999 년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1만원권 이상 상품권을 발행할 때 인지세를 내는 것을 빼면 당국의 감독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액면가로 따졌을 때 지난해 8조원 이상의 상품권이 시중에 풀렸는데도 한국은행의 통화량 산정에서는 제외된다.
급전이 필요한 개인이나 기업들이 신용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하고서 수수료를 뗀 뒤 되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상품권 깡'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백화점 인근 구둣방 등에서 판매되는 할인 상품권은 이 같은 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이에 따라 이번 국정감사 때도 다수의 의원이 고액상품권 발행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규제 강화를 요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고액상품권은 뇌물이나 탈세 목적의 지하경제 수요 등 불법적 자금 유통에 악용될 여지가 매우 높다"며 "초고액 상품권의 발행 현황 파악, 유통 관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김현미 의원도 "상품권은 유통단계에선 규제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액상품권의 발행 전 등록과 회수 정보를 금융당국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액상품권 규제가 내수 경기 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에 역행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09년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이 상품권 등록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기업들의 반대에 부딪혀 폐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