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6 03:11 AM
삼성그룹이 석유화학과 방위산업 부문을 한화그룹에 넘기는 '빅딜'은 핵심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양 그룹 공통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분석된다.
삼성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비핵심사업을 떼내고 체질을 개선함으로써 전자 등 주력사업에 대한 집중력을 높일 수 있고, 한화는 주력인 석유화학과 방위산업 부문 전력을 대폭 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주변에서는 이번 빅딜이 양 그룹 모두에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많은 윈-윈 거래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 선택과 집중 필요한 삼성
석유화학과 방위산업은 한때 삼성그룹이 사업 기반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업들이다.
하지만 애플, 구글 등과 어깨를 겨누는 글로벌 IT·전자 기업으로 성장한 지금의 삼성 입장에서는 의미를 두기 어려운 사업이 됐다.
해당 기업의 자체 역량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데다, 그룹 차원에서는 미래 생존을 위해 어느 때보다 선택과 집중이 요구돼 가외의 자원을 투자할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의 경우 미국과 유럽 선진 기업들이 규모와 기술력에서 확고한 우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방위산업 역시 규모와 전문성을 겸비한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대형화하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삼성의 모태 기업인 옛 제일모직의 경우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에 넘기고 남은 소재 부문은 삼성SDI[006400]와 합병시킴으로써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석유화학과 방위산업은 그룹 내부적인 사업 구조조정만으로 활로를 찾기 어렵고, 그렇다고 사업을 정리할 수 없어 그대로 끌고 갔다가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매각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 한화, 중심 강화로 재도약
한화그룹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테크윈[012450]의 인수 주체가 된 것은 무엇보다 한화가 석유화학과 방위산업을 주력 사업으로서 삼고 있어 인수 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최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인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하는 한화케미칼[009830]은 현재 한화그룹 내에서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테크윈을 인수하는 ㈜한화는 한화그룹의 모태 기업이자 대표적인 국내 방위산업체 가운데 하나다.
한화그룹은 이번 삼성 계열사 인수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한화그룹은 정유사업을 하는 삼성토탈을 인수함으로써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손을 떼야 했던 정유사업에 15년 만에 다시 진출하게 됐다.
이와 함께 석유화학 부문 매출 규모가 18조원으로 늘어나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 1위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
방위산업 부문에서도 단숨에 국내 1위로 올라서면서 방위산업을 그룹 핵심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
한화는 지난해 방위산업 매출이 1조원 수준으로 국내 업계 4위에 그쳤으나 업계 3위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인수로 매출 규모가 2조6천억원으로 커지게 됐다.
그 결과 한화그룹은 재계 서열 9위로 올라서게 됐다.
◇ 자발적 빅딜 속전속결로 타결
아울러,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은 주요 사업 영역에서 겹치는 부분이 없어 상호 견제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이번 빅딜이 성사되는 주된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과 한화는 그동안 드러난 협력 관계는 없지만 갈등도 전혀 없었다.
양측 계열사 간의 거래는 삼성테크윈과 ㈜한화가 무기류 부품을 상호 공급하는 연 300억원 수준의 거래가 전부였다.
삼성그룹이 해당 사업의 성격상 반드시 국내에서 매각 파트너를 찾을 필요가 있다 해도, 다른 주력 사업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대기업을 파트너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번 매각 협상은 한화 측에서 먼저 제안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전에 양측간에 상당한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그룹이 올 상반기 삼성석유화학을 삼성종합화학과 합병한 것 등도 이번 매각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였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협상에 평소 친분 관계가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CCO)이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협상이 수개월 만에 타결되면서 속전속결로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두 그룹이 갈등이나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