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6 07:57 PM
전문가들은 1천조원을 훌쩍 넘은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27일 경고했다.
가계나 금융기관의 부실이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 추세대로라면 중장기적으로 소비를 크게 위축시켜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소득 확대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
부동산활성화 대책이 나온 뒤 가계부채의 총액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보다 너무 빨리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저신용자에게 가계부채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개인회생 신청 증가만 봐도 그렇다.
가계부채는 세가지 유형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금융기관의 대출이 부실화해 금융 불안정성이 커진다. 아직 그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둘째, 소비가 위축된다. 지금 분명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가계부채가 내수 회복세를 제약할 수 있다. 셋째, 저소득층·저신용층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실물경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물로 돈이 옮겨가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행에 금융중개지원제도가 있다. 약 14조원 규모다. 중소기업이나 벤처 자영업자 등 꼭 필요한 곳에 금융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금융이 실제 투자, 소비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계부채는 중장기적으로 분명히 위험 요인이다. 지금 당장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져 금융 불안정성이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가 소득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지는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대출 등이 일부만 부실화해도 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는 개인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성장이 거의 정체하고 있고 소득 재분배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제 성장의 온기가 주로 윗목으로만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민이나 저소득층의 삶이 대단히 어려워지면서 개인 회생이나 파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부채를 갚기 어려운 사람들은 회생이나 파산 제도를 적극 활용해 부채의 늪에서 빨리 빠져 나와 새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상환을 강요하면서 경제활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많은 이들이 가계부채가 많아지면 금융기관이 버틸 수 있느냐의 시각에서 평가하려 하는데, 초점과 기준을 바꿔 저소득층 가계가 버틸 수 있느냐는 시각에서 봐야 한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가계부채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 회생 신청이 늘고 있는 것도 그런 영향으로 본다.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소득을 늘려줄 수 있는 정책과 적극적인 가계부채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최근 금리 인하를 두고 논란이 있는데 현재 채무자의 입장을 고려하면 인하 쪽이 더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정책이라고 본다. 다만 신규 대출 증가는 막을 수 있는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대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금리를 내리지 않는 것은 현재 경제 상황에서는 주객전도로 볼 수 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현재의 가계부채는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 측면에서 봤을 때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담보가 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기만 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택 구입 목적으로 늘어난 가계부채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현 수준에서 2∼3년 안에 크게 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으므로 시스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부채를 진 개인이나 가계 입장에서 보면 파산의 우려가 굉장히 높아졌다고 본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돈을 싸게 빌릴 수 있다보니 가계 부채가 늘어났고,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에 따라 저소득층도 대출을 많이 늘려 상환 능력이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자본 대비 차입비율을 낮추는 '디레버리징'을 유도해야 한다.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은 가계 대출을 줄이고 더이상 대출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개인 회생 등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모기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한 사람의 10%가 전략적 디폴트라는 연구가 있다. 실제로 파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데도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다는 이유로 파산 신청을 하는 경우다. 이런 사례를 막아 꼭 필요한 사람만 개인 회생 신청 등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소득이 늘어야 가계부채 문제가 해소된다. 빚을 정부가 갚아주거나 탕감해줄 수는 없다. 국민행복기금처럼 한 두번 정도 할 수는 있어도 상시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다만 저성장 국면에서 소득 증대를 통해 가계부채를 상환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연착륙 시도를 먼저 해야 한다. 급하게 가계부채를 줄이려 할 경우 개인의 파산이 늘어나고 경제 위축도 심해질 수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가계부채 문제가 당장 위기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정부가 부동산규제를 풀고 금리를 낮춰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소비하고자 하는 국민의 욕구가 있는데 소득이 그에 못 미치는 현상이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규제완화 등 정부의 소비확대 정책이 생산효과로 이어져 소득이 증가하면 국민은 굳이 빚을 지지 않아도 된다. 소득이 부족하다 보니 경제의 생산규모 대비 부채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수요(소비) 확대가 시차를 두고라도 생산 증가로 이어지면 괜찮겠지만 지금은 그런 조짐이 잘 나타나고 있지 않다. 부채는 늘고 있지만 생산, 소비, 투자가 늘어나는 모습이 안 보이다. 부채가 계속 늘어나면 상당히 유의해야 한다.
부채가 늘어나는 당시에는 대출금으로 투자하거나 소비하는 현상이 나타나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부채는 결국 상환해야 하는 자금이므로 장기적으로 소비위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제일 위험한 것은 부채를 갚지 못해서 가계부실 문제, 더 나아가 금융기관 부실로 연결되는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만 놓고 보면 기준금리를 높이는 것이 맞지만 현재 경기가 안 좋은 것이 문제다. 결국 규제완화, 구조조정을 통해 소비 확대가 경제 생산, 소득증가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데 계속해서 부채 늘어나면 부동산시장 규제 등을 통해 부채 증가의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
외국과 비교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높은 편이다. 한국의 특수성이 있다.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이다. 따라서 부동산가격이 갑자기 내려가면 가계부채가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