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5 05:03 PM
연말정산 파동으로 월급쟁이의 반발이 들끓었던 가운데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의 탈세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월급쟁이의 '유리지갑'이 세무당국에 적나라하게 공개돼 정부의 세금 제도에 따라 집안 살림이 큰 영향을 받는 반면, 일부 고소득층은 수입을 축소 신고함으로써 세금을 적게 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 근로소득 100% 파악되지만 자영업 소득 파악률 62.7% 그쳐
이번 연말정산 파동 속 근로소득 납세자의 반응 중에는 '나보다 훨씬 더 버는데 세금을 제대로 안 내는 사람이 많다'는 불만이 많았다.
특히 의사와 변호사, 세무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나 음식점, 골프연습장 등 현금수입업종 자영업자들의 경우 '번 만큼 낸다'는 세금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근로소득은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탈세 소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사업소득이나 임대소득 등은 본인의 신고를 바탕으로 세금을 매기므로 소득 탈루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25일 한국은행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새 기준 국민계정상 지난 2012년 피용자(월급쟁이) 임금과 실제 신고된 근로소득금액은 모두 520조원 안팎으로, 근로소득 파악률은 100% 수준이다.
반면, 세무당국에 신고된 사업·임대소득은 72조573억원인데 국민계정상 개인 영업잉여는 114조8천465억원으로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률은 62.7%에 그쳤다.
자영업자의 소득 37.3%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셈이다.
손님이 카드를 쓰거나 현금영수증을 끊어가면 소득이 자동으로 신고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일부 자영업자들은 '꼼수'를 쓰기도 한다.
국세청이 지난해 공개한 사례를 보면 난치병 전문 한방병원 원장인 A씨는 환자에게 고액의 1개월 치료비 선납을 요구하면서 현금영수증 미발행 조건으로 할인 혜택을 제시했다.
부동산 임대업자 B씨는 일부 임대주택이 공실인 것으로 속이고 사업용 계좌에 입금된 돈만 세무당국에 신고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돈 있는 사람에게는 더 걷고 없는 사람에게는 적게 걷는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고소득 자영업자 는 세원조차 제대로 포착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부자 증세' 목소리 커져…전문가 "복지지출부터 줄여야" 주장도
국제적으로도 '부자 증세'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새해 국정연설에서 부자 증세 등을 통해 빈부 간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중산층을 살리자고 호소했다.
그는 "상위 1%가 축적된 부에 걸맞은 세금을 내도록 '세금 구멍'을 막아야 한다"며 "그 돈을 더 많은 가정이 자녀 보육이나 교육에 쓰도록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 구체적 방안으로 부부 합산 연소득 50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을 상대로 자본소득·배당이익 최고세율을 28%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집권 전반기 15%에서 23.8%로 올린 소득세율을 한 번 더 인상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조세제도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한국의 빈곤율은 세금을 내기 전 17.3%에서 세금을 낸 후 14.9%로 2.4%포인트 내려갔다.
인구 1천명 가운데 빈곤층이 173명이었는데, 정부가 세금을 걷어 저소득층을 감안한 재정지출을 한 결과, 24명이 빈곤층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OECD 회원국의 경우 세전·세후 빈곤율 차이는 프랑스 26.8%포인트, 독일 23.5%포인트, 그리스 17.9%포인트, 폴란드 16.9%포인트 등으로 한국보다 훨씬 컸다.
한국의 세전 빈곤율(17.3%)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지만 세후 빈곤율(14.9%)은 가장 높다.
부유세가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부유세는 다른 세금보다 조세 저항이 심해 징세 과정에서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저서에서 "부유세는 저축을 징벌하는 제도"라며 "근검절약해 모은 재산에 세금을 걷어 저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타인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소득층에 부과하는 세율이 높으면 이들이 해외로 자산을 빼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조세 저항과 경기 위축 등을 감안하면 증세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보편적 복지를 손봐서 복지 지출을 줄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