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2 10:52 PM
By 노승현
지난 2010년 5월 6일 뉴욕증시를 지켜보던 전 세계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주가 폭락으로 공황에 빠졌다. 그리스 등 유럽 일부 국가들의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로 300포인트 가량 하락하던 다우존스 산업지수가 5분 만에 갑자기 600포인트나 추가로 하락해 10,000선이 붕괴된 것이다.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순간적 급락)라 이름 붙여진 이 현상 때문에 순식간에 시가총액 1조 달러가 증발했다.
추가 하락분은 20분 안에 상당 부분 회복됐지만 이날의 기록은 월스트리트 역사상 최대 장중 하락폭으로 남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증시를 혼란에 빠뜨린 이날 '플래시 크래시'는 영국의 한 선물 거래인이 자신의 컴퓨터 하나로 일으킨 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개인에게 어느 정도로 시장의 혼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BBC방송, 월스트리트저널, 마켓워치, 미 경제전문방송 CNBC 등에 따르면, 런던 교외의 작은 집에서 선물거래를 하는 초단타 선물거래인 나빈더 싱 사라오(37)가 시세 조작 등의 혐의로 영국 경찰에 붙잡혀 구금 중이며 미국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사라오는 텔레뱅킹을 이용한 금융사기와 총 10건의 원자재 시세조작 및 사기,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은 수준에서 호가를 냈다가 거래 체결 이전에 거둬들이는 방식의 불법 거래인 스푸핑(spoofing)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2월 사라오가 플래시 크래시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수배해왔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도 사라오가 플래시 크래시 당시 시장내 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며 그를 상대로 동일한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미국 법무부는 사라오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E-미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선물시장 조작에 초단타 매매에 쓰이는 일반적인 자동 거래(트레이딩) 프로그램을 사용해 2억 달러 상당의 거래를 조작함으로써 금융시장을 교란했다고 밝혔다.
대규모의 매도 주문을 동시에 서로 다른 가격대에 쏟아내는 불법 초단타 매매인 '스푸핑(spoofing)' 수법의 일종인 '레이어링'(layering) 기법으로 시장에 대규모 거래를 일으키고 시세를 조작해 주가가 크게 떨어뜨린 후 주문을 취소하고 낮은 가격에 선물 거래를 통해 차익을 챙겨 온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E-미니 S&P500 선물 가격이 급락하고 다우지수는 약 5분 만에 600포인트 가량 급락한 바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설립한 선물회사 '나브 사라오 퓨처스'을 통한 이러한 거래로 하루에 82만 달러(8억9,000만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등 2010년 4월부터 지난해 4월 무렵까지 무려 400일 가까이 이 같은 시세조작과 스푸팅을 통해 4,000만 달러(433억원) 이상을 챙겼다.
사라오는 '플래시 크래시' 당일에도 자동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해 E-미니 S&P500 선물계약에 대규모 매도 주문을 내는 방식으로 시세를 교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 이후 미국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안은 스푸핑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지난해 처음으로 트레이더들을 스푸핑 혐의로 체포하기도 했다.
살 아누크 테미스트레이딩 창업주는 사라오 체포 소식에 "주식시장 폭락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지금에서야 범인을 찾았다"며 사법당국이 5년씩이나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CNBC는 "사라오가 플래시 크래시에 책임이 있다고 불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한 사람의 시세교란으로 플래시크래시가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월스트리트 거래인 출신으로 현재 트레이딩 및 포트폴리오 관리기관(ITPM)의 선임 트레이딩 멘토로 일하는 라지 말호트라는 CNBC에 플래시 크래시 당시 수백만 달러의 이익을 본 트레이더들은 흔하다면서 사라오의 체포는 당국의 무능력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라오는 플래시 크래시 당시 90만 달러(약 9억 5000만 원)의 이익을 냈는데 평상시의 상황이라면 그는 작은 이익을 위해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한 것이라고 CNBC는 전했다.
또한 현재 불법으로 규정된 스푸핑 역시 본래는 비유동적 자산시장의 반응을 보기 위해 트레디어가 자신의 손실을 감수하고 행하는 적법행위라고 말호트라는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