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8 03:51 PM
By 재경일보
지난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십만의 사람들이 모였다. 할 말이 있어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러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현장에 들어줄 사람은 없고, 막아선 차벽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경밖에 없다. 공허한 외침을 몇차례 되뇌인 뒤에 할 행동은 무질서와 폭력 밖에 없다. 무장하고 막아선 경찰은 군중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소리도 지르고 주먹도 휘둘러볼 환경을 조성해준다. 투쟁이 슬픔이 된 세상이다.
야만을 낭만처럼 부추기는 사회파괴세력
광우병 이후 최대 군중이 모인 이유는 답답한 현실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여서 외칠 때 무슨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모여서 집회하고 시위하고 항쟁해야 하는 때는 사회가 법과 제도와 절차를 무시하는 무법 천지의 독재 권력 세상일 때다. 현 대통령은 선거 제도로 선출된 절차상 하자가 없는 대통령이다. 독재자의 딸이지만, 본인이 현재 독재를 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하는 정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고 불통 대응에 화가 나서 독재자나 다름 없고 쿠데타나 다름없는 폭거를 한다고 생각이 드는 이도 있겠지만, 과잉된 감정과 표현일 뿐이고 사실은 아니다.
법을 무시하는 정부라면 시민혁명이 필요하겠지만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법과 질서와 제도를 지키고 사회안정을 유지하는 세력에게 정당성이 있다. 도덕성도 상실하고 소통도 잘 못하고 막무가내인듯한 새누리당이 매번 선거에서 이기는 이유는 현재 민중의 삶에 새누리당이 더 도움이 된다고 투표자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면 선거로 교체하면 되고, 지금 당장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면 탄핵을 하면 된다. 노동개혁도, 농민의 삶도, 경제체제도 법과 제도와 절차에 따라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다. 모여서 떠든다고 교과서 국정화가 철회되지도 않고 경제 정책이 변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대화하고 타협하고 법을 바꾸고 제도를 만들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폭력을 동원한 군중 집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혼란과 교통체증뿐이다. 대규모 민중집회에 모여든 대다수는 현재를 고민하고 대안을 요구하고자 하는 보통의 상식적 군중일 것이지만, 그 모임의 최종 결론은 사회 불안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있냐고, 종북 세력이 어디 있냐고, 나는 내 의지로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집회의 상황과 결론은 철저하게 반사회적이고 소모적인 반국가 상황만 초래한다. 한반도의 절반을 차지하고 2천5백만명의 북한 국민을 속이고 60년의 철권통치를 하는 괴뢰집단은 대한민국의 혼란을 야기시키는 집회와 시위와 무관하지 않다. 99퍼센트의 사람은 사회에 대한 뜨거운 정의감으로 나온 일반 군중이겠지만, 기획과 선전에 급진 좌경 세력의 입김과 목적은 아주 유효적절하게 투입되었다.
몰려든 민중들과 막아선 의경들, 그리고 투쟁심을 고취시키는 음악과 발언들, 그리고 몰려든 군중 앞에 겁과 흥분으로 가득한 경찰의 대응은 무질서, 그 자체다. 경찰의 과잉대응을 트집잡지만, 수십년의 집회시위 경험을 통해 흥분된 군중과 경찰의 부딪힘의 결과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회 파괴 세력의 작품이다. 시위대의 구호와 입장과 주장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사람이라도 시위의 결과를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무질서와 누군가의 신체파괴, 사회의 갈등 외에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회파괴세력의 목적인 사회불안 야기라는 기획의도에 백퍼센트 부합하는 것이다.
11월 14일에 모인 숫자는 광우병 사태 이후 최대인 10만명이다. 만약 이 숫자가 응집된 힘과 훈련을 거친 군사라면 나라라도 엎을 수 있는 엄청난 숫자다. 할 일 많은 사람들이 놀 일 많은 주말에 모여들만큼 분노케 한 이 정부의 막대응이 불러온 혼란이기도 하지만, 이념을 가장한 이익집단의 충돌 앞에 국민과 국익이 훼손된다.
여당도 야당도 좌경세력도 민생과 경제를 부르짖으며 정당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두 민생사기단이다. 민중을 휘둘러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각자 이익집단이다. 권력을 획득하고자 하고 경제적 잇속을 노리면서 보수와 진보를 논하고 역사와 혼을 이야기하며 민생과 경제로 사기를 친다. 그 극렬한 대립의 현장에 10만명이 동원된 것이다.
이익집단의 가장된 이익 추구 속에 동원된 민중들은 폭력집회의 일원이 되어 소리도 질러보고 몽둥이도 휘둘러보고 가슴에 뭔지 모를 뜨거움도 느껴본다. 젊디젊은 의경은 몰려든 군중을 향해 어찌해야 할 바 몰라하다 흥분과 분노와 공포에 휩싸여 물대포를 쏘아댄다. 사회는 불안해지고 경제는 발목을 잡히고 국민은 힘이 빠진다.
과거의 투쟁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골리앗 같은 권력앞에 용감하게 덤벼드는 다윗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시위는 낭만적 자아도취에 빠진 야만 외에 그 아무것도 아니다. 대화와 타협, 절차와 제도가 통하는 시대에 고함을 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자에게 정당성은 없다.
투쟁이 슬픔이 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