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5 08:08 AM
By 노승현
몇 년 전만해도 시리아 기독교인인 쿠리에 가족의 성탄절은 마을 교회에서의 성탄예배로 시작됐다.
그리고 성탄예배 후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오후의 만찬을 즐겼고, 이웃들은 길을 지나다 만나면 멈춰 성탄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성탄 트리 옆에서 뛰놀았다.
이슬람 수니파 단체 IS(이슬람국가)와 다른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이 시리아 기독교인 난민들을 박해하고 대학살하고 아이들을 납치하기 전의 일이었다. 또 내전으로 나라가 갈가리 찢기기 전의 일이었다.
이것이 쿠레에 가족들이 시리아를 떠나기 전에 항상 누리던 삶이었다.
조셉 쿠리에(Joseph Kourieh·57)는 아내와 다섯 자녀와 함께 레바논의 난민촌에서 시리아에서의 성탄절을 회상하며 "정말 아름다웠었다"고 말했다.
농부였던 쿠리에는 "IS는 기독교인들을 공격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가 더 많은 몸값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리에는 2014년 8월 밀과 콩을 수확할 예정이었는데, 이 때 IS가 들이닥쳤고 모든 것을 빼앗기면서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가 됐고 그의 가족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남은 재산 등 짐을 다 꾸린 뒤 난민의 대열에 낄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이후로 고향 마을은 텅 비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쿠리에는 비행기를 타고 이웃나라인 레바논에 왔다. 그리고 올해 성탄절은 이전에 그가 누렸던 성탄절, 기쁜 성탄절이 아닌 슬픈 성탄절이 됐다.
쿠리에처럼 전 세계가 성탄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전쟁과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대부분 레바논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의 기독교인 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4일 고국을 떠나 인근 레바논에 정착한 기독교인 시리아 난민들이 '절망적인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는 현재 이슬람 국가지만 아주 오랜 기독교 전통을 가진 나라로, 인구의 약 10%가 기독교인이며, 이 중에는 예수께서 사용하셨던 아람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시리아는 수도인 다마스쿠스(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사울(이후 사도 바울)이 회심하는 역사도 일어났던 곳이다. 그는 초기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내전과 IS의 박해와 대학살로 고향을 떠나 난민의 신세가 됐다.
인구가 400만명 가량인 레바논은 시리아 난민 약 100만 명을 받아들였다. 레바논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로 인해 시리아 난민들은 고조되는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을 느끼고 있고, 교육과 건강 진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그래서 레바논이 고향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레바논은 인구 절반 이상이 무슬림이지만, 기독교 신자도 전체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동에서는 보기 드물게 예외적으로 크고 활기 있는 기독교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이에 많은 시리아 기독교인 난민들은 레바논을 찾았다.
하지만 기독교 시리아 난민들은 레바논에서도 공격적인 성향을 띈 무슬림의 잦은 공격에 좀처럼 마음 편할 날이 없고 고난과 굴욕을 견뎌야 한다.
이들 대부분은 현재 레바논에서 현지 교회가 제공하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등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레바논에서 시리아 난민에 대한 취업 규제 등이 강화되면서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현지인 이웃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아기 예수 탄생 조형물을 설치하고 반짝거리는 조명 시설도 해놓으면서 풍요로운 성탄절을 만끽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쿠레에 등 기독교인 시리아 난민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스웨덴, 호주 등 서구권 국가로의 망명을 희망해왔고, 일부는 독일, 스웨덴, 호주 등에 정착했다. 하지만 수년이 걸리는 절차를 견뎌야 할 뿐만 아니라 터키를 경유하는 위험한 여정과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제약으로 인해 대부분은 국경이 맞닿아있는 레바논에 정착했다.
쿠리에 가족은 지옥의 변방에 살고 있다. 방이 두개 있는 아파트를 렌트해서 근근히 월세를 지불하면서 지내고 있다. 음식은 지역 교회들이 제공해준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돈이 없어 기름값, 전기세, 생필품을 구입하는 것도 힘들다. 레바논은 자주 정전이 되는데, 어둠을 밝힐 수 없어 암흑 속에서 지내야 하기도 한다. 겨울 기간 동안, 난방도 되지 않는 집에서 후원 받은 재킷과 스웨터를 입으면서 견디고 있다.
돈이 워낙 없다 보니 올해는 성탄 트리도 만들지 못했다.
아내인 누라 쿠리에(Nura Kourie·50)는 "이곳에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빈털터리 신세"라며 "이번 성탄절은 아주 슬픈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남편 요세프도 올해는 미사에 참석한 뒤 역시 기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계획이라며, 정통 중동 음식 후무스와 고기 등을 배불리 먹곤 했던 고국의 성탄절을 씁쓸히 떠올렸다.
누리에 가족은 이번 성탄절에는 인근의 교회에서 열리는 성탄예배를 참석할 예정이다. 예배 이후에는 교회의 점심 식사를 함께 할 생각인데, 이 음식들도 대부분 후원 받은 것이다.
레바논 교회들은 시리아 기독교인 난민들을 포함해 난민들을 섬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의료비로 현금을 제공하기도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4일 성명을 내고 중동의 기독교인들이 IS의 잔인한 만행에 시달리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의 일부 지역의 교회에서는 성탄절이 되면 수세기 동안 교회 종이 울렸지만, 올해는 침묵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학살을 당하고 있다는 표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