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6 09:36 PM
By 노승현
강경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당시 최초이자 40개부처 장관 중 유일한 기독교인 장관이었던 샤바즈 바티(Shahbaz Bhatti)는 지난 2011년 3월 2일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소수인종 담당 연방장관(Minister for Minority Affair)이었던 그는 소수 민족과 소수 종교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기독교인을 포함해 소수 종교인들을 박해하는 데 악용되고 있는 파키스탄의 신성모독법(blasphemy laws) 폐지를 위해 힘쓰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비운의 암살 희생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암살 대상 1호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파키스탄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다 자신의 목숨을, 피를 아낌 없이 내놓았던 위대한 순교자였다.
바티 전 장관은 장관이 되기 전에는 파키스탄소수자동맹(APMA)를 창설해 파키스탄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운동가로 일했었다. 그는 소수민족과 종교의 인권 보호 및 권리 인정을 요구하다 이슬람 과격분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여러 번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죽음의 고비도 여러 차례 넘거야 했다.
그렇게 파키스탄 기독교인들을 위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인권운동에 힘써오던 그는 파키스탄 연방정부의 소수민족과 종교를 전담하는 종교소수부 장관으로 임명돼 화제가 됐었다. 인구 95% 이상이 무슬림인 파키스탄에서 소수민족 전담 부서가 내각의 한 부서로 격상된 것도 처음이었고, 기독교인이 장관에 임명된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장관이 된다는 것은 그의 신분이 공개적으로 노출돼 이슬람 과격분자들에 의한 살해 위협과 협박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는 파키스탄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 장관직을 수락했다. 그리고 장관이 된 이후에도 그는 소수자들을 위해, 기독교인들을 위해 살았고, 살해 당하고 싶지 않다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신성모독법을 계속해서 폐지하려 했다. 그의 이 같은 행동은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바티 전 장관은 살해당하기 얼마전인 2010년 10월 7일에는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리더십 분야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아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당시 기독교 방송인 CGNTV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간증하기도 했다.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교회에 다녔습니다. 하루는 저희 교회의 리더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심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성금요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죠. 예배당에 앉아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속죄를 위하여 희생하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날이 제가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예수님께서 내 삶의 핵이 되셨습니다. 저는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폭력을 철학으로 삼는 군사 집단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기독교인들을 공격하고, 그들은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집단들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기독교 마을에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병원을 불태우고 다른 기독 시설들을 불태웠습니다. 또한 그들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9명의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파키스탄의 많은 사람들의 기도의 응답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복음은 실천을 통하여 나타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세계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어설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임을 증명할 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복음이 제 삶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훗날 주님을 위하여 제 생명을 희생할 수 있다면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 여길 것입니다.
저를 위해 단 1분만이라도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4시간 중에 단 1분만 기도해주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제 삶에서 기도는 정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당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의 고통 받는 그리스도인과 56개 소수민족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생명을 걸었다"고 밝혔었다.
당시 그는 "24시간 중 단 1분이라도 고통 받는 파키스탄 기독교인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단 1분입니다."라고 말하며 한국 그리스도인을 향한 기도도 부탁했다.
그는 또다른 동영상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성모독법의 폐지를 위하여 사리아법에 반대하는 활동을 이끌며, 억압당하고 차별당하며 박해 받는 기독교인과 다른 소수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낼 때, 탈레반이 저를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를 위해 모든 삶을 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으며, 그 십자가를 따를 것입니다."
바티 전 장관의 암살 후 미국의 복음주의종교자유단체인 퍼스트스텝포럼은 바티 전 장관의 생전 인터뷰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었다.
1분30초짜리 영상에서 바티 전 장관은 "나는 신성모독법을 반대하는 것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내 믿음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한다. 우리는 소수 극단주의자들이 그들의 어젠다를 파키스탄 땅에서 적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는 동영상에서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고통 받는 공동체와 함께 살아간다. 그들의 권리를 방어하다 죽을 것이다"라며 죽음까지 불사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어떠한 위협이나 경고도 나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고 강인한 의지를 내보였다.
바티 전 장관과 함께 7년간 일해 왔다는 퍼스트스탭포럼 요한 칸델린 친선대사는 이 인터뷰 동영상에 대해 "바티 장관의 말은 세계를 향한 자기고백이었다"며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바티 전 장관은 암살당하기 전까지 미혼으로 지냈다. 그것은 자신이 예기치 못하게,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 하용조 목사는 바티 전 장관의 죽음 후 "바티 장관과의 3일간 만남을 회고하며"라는 제목의 국민일보 기고글을 통해 그의 순교적 죽음을 애도했다. 다음은 하용조 목사의 기고글이다.
"파키스탄의 샤바즈 바티 소수민족부 장관의 피살 소식을 들은 후 지금까지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바티 장관의 순교적인 삶입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순교였습니다.
내가 바티 장관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0월 7일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의 명예 리더십박사 학위를 수여하기 위해 그를 초청했을 때입니다. 누군가가 바티 장관을 나에게 소개했을 때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너무나 과장된 이야기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삶을 조사해볼수록 사실이라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상하게도 주한 파키스탄 대사를 대동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질문했을 때 그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사 학위 수여식 전인 10월 6일, 서울 하이얏트호텔 별실에서 초청 만찬이 베풀어졌습니다.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는 당시 김상복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님을 명예총장(챈슬러)에 추대하고 방지일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님과 전재옥 이화여대 명예교수에게는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고은아 권사에게는 명예 선교학박사 학위를, 바티 장관에게는 명예 리더십박사 학위를 수여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바티 장관은 혼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찬 도중 바티 장관의 간증 시간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와 자신의 삶의 의미, 순교의 각오 등이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 테러와 살해 위협을 계속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장관이 되어서도 대통령, 총리, 장관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서슴지 않고 복음을 전한다고 간증했습니다. 그에게는 외로운 길이요 힘든 길이라고 했습니다.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날에도 그는 자기의 조국과 버림받은 자들과 학대 받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0일 온누리교회 창립 25주년 축하 행사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가졌는데 그는 그곳에서 축사를 했습니다. 똑같은 주제의 말씀이었습니다. "홍수로 인해 집을 잃은 수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 "테러와 폭력으로 더 이상 사람들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는 기도 부탁이었습니다.
행사가 끝날 무렵 바티 장관으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무대 뒤 작은 방에서 나를 기다리던 바티 장관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껴안고 양볼에 키스를 하면서 "당신은 나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긴 채 그는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자신이 죽을 줄 알고 십자가를 붙들고 행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세계 곳곳에 숨겨 두셨습니다.
바티 장관의 순교는 파키스탄을 변화시키는 촛불이요, 숨결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티 전 장관이 남긴 말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본다.
"예수님의 사랑, 복음이 제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훗날 주님을 위해 제 생명을 희생할 수 있다면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 여길 것입니다.
저는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우리를 위해 모든 삶을 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으며, 그 십자가를 따를 것입니다.
저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고통 받는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권리를 방어하다 죽을 것입니다.
24시간 중 단 1분이라도 고통 받는 파키스탄 기독교인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단 1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