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28 10:04 PM
By 노승현
브라질에서 지카(Zika) 바이러스에 의한 소두증(小頭症) 의심 사례가 4천 건을 넘어서는 등 폭발적으로 번져가면서 미주 대륙에서 최대 400만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남미를 여행한 뒤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이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으며, 아시아로도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할 수 있는 지카 바이러스의 빠른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다음 달 1일 긴급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집트숲모기, 수혈, 성관계를 지카 바이러스 감염 경로로 주목하고 있다.
마거릿 챈(Margaret Chan) 사무총장은 28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서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의 확산이 가벼운 위협에서 걱정스러운 수준이 됐으며 이것에 대해 평가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소집해왔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지카 바이러스가 미주대륙에서 발견됐으며, 지금은 이곳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또 현재 전 세계 23개 국가에서 발생 사례가 보고됐다"며 WHO가 발빠른 대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제보건규정에 따라 지카 바이러스 대책 긴급위원회를 2월 1일 소집하기로 했다"면서 극도로 높은 위험 수준이됐다고 우려했다.
긴급 위원회는 지카 바이러스 발생에 따라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할 지와 WHO가 바이러스 발생 지역에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해 WHO에 권고할 예정이다.
지난해 WHO는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유행에 대해 너무 늦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이에 대응 시간을 줄이겠다고 약속했었다.
챈 사무총장은 "지카 바이러스와 신생아 소두증의 관계에 대해 과학적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지금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챈 사무총장의 발언과 달리 WHO가 이번에 국제 비상사태 선포 등을 논의할 긴급위원회를 소집하기로 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미 너무 늦은 대응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WHO가 '소두증 사태' 초기에 즉각 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은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일부 전문가가 있다면서 "미국의사협회저널(JAMA)의 전문가 2명은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2014년 에볼라 사태 때의 WHO의 늦은 대응을 지적하며 즉각적인 위원회 소집을 요구한 바 있다"고 전했다.
▷ 백신 치료법 없는 지카 바이러스, 더 위험한 건
지카 바이러스는 현재 백신이나 특별한 치료법, 신속 진단 테스트 방법이 없다. 또 뎅기열처럼 가벼운 발열과 발진, 그리고 눈의 충혈을 초래한다. 감염된 사람의 약 80%에서 증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감염된 지도 모른 채로 감염이 된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지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모기의 분포를 볼 때 국제적으로 더 확산할 가능성이 크고, 더구나 올해는 엘니뇨 현상으로 여러 지역에서 모기 개체 수가 급격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여기에다 전 세계적으로 면역력을 가진 인구가 적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직 감염에 따른 사망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신생아 소두증의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다. 소두증은 신생아의 두뇌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채 작은 뇌와 머리를 작고 태어나는 뇌 손상을 말한다.
챈 총장은 "아직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 신생아 출생 그리고 (급성으로 말초신경, 척수, 뇌신경 등의 파괴로 마비가 발생하는) '길랑바레' 증후군 간의 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럴 개연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챈 총장은 또 "지카 바이러스는 그동안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적도 지역에 주로 발생했다"면서 "지난 2007년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2013∼2014년 태평양 4개 도서 국가에서 발생하면서 점차 지역을 넓혀가고 있고 뎅기열과 비슷하지만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집트 숲 모기'가 옮기는 지카 바이러스는 1947년 우간다의 지카 숲에 사는 붉은털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그리고 현재는 브라질 등 남미 대륙에 이어 미국, 아시아, 유럽 등에서도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가 속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비상이 걸린 상태다.
WHO 미주지역 본부(PAHO)는 과거 뎅기열에 걸린 사례를 고려할 때 미주대륙의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가 내년까지 300만∼400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WHO 미주지역 본부의 실바인 알리히에리 전염병 대응팀 팀장은 아직 지카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모기가 넓게 퍼져 있는데다 감염되더라도 아픈 증상이 별로 나타나지 않아 조용하게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이 같이 추정했다.
문제는 현재 백신이나 치료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개발하는데까지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확진 판정을 받으면 대책이 없이 천운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신생아 소두증에 걸리는 것은 물론, 사망할 수도 있다.
브루스 에일워드(Bruce Aylward) WHO 사무차장은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전하고 효과 있는 백신을 개발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카 바이러스가 신생아 소두증 등의 발생 원인인지 확인하는 데도 6~9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 2016 하계올림픽 열리는 브라질 등 전 세계에서 감염자 속출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 문제로 가장 비상이 걸린 곳은 브라질이다.
브라질 보건부는 27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 23일까지 4천180건의 의심 사례가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소두증으로 확인된 것은 270건이고, 462건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3천448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의심 사례는 전국 830여 개 도시에서 보고됐지만, 대부분 북동부 지역에 86%가 집중됐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브라질 정부는 방역요원과 군 병력을 동원해 '이집트 숲 모기' 박멸 작전에 돌입한 상태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올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열릴 예정인데, 최악의 전염병이 발병하면서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경우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지카 바이러스는 브라질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스위스 연방 보건국은 최근 적도 국가를 다녀온 여행객들에게서 2건의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포르투갈 보건당국도 브라질에 다녀온 여행객 5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독일과 영국에서도 감염 확진자가 나왔으며, 덴마크,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남미 여행을 갔다 온 이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미국 미네소타·아칸소·버지니아 주에서도 해외에서 돌아온 주민들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보건당국에 의해 확인됐다.
에일워드 사무차장은 중국에서 지카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매개체인 모기가 있고 뎅기열이 발생했던 나라에서는 어느 곳이든 지카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 마지막 때 걸린다고 한 역병들일까?
누가복음 21장 11절에는 마지막 때(말세, 종말의 때)가 되면 처처에 온역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계속해서 발생하는 전염병들은 이 예언에 더 주목하게 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전염병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는데, 대표적인 전염병으로 흑사병(페스트), 장티푸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독감 등을 들 수 있다.
BC 430년에는 아테네에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발생해 아테네 군인과 민간인 4분의 1이 사망했고, 이로 인해 결국 아테네 동맹군이 스파르타 동맹군에게 패전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페스트라는 흑사병은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바꿀 정도의 엄청난 영향역을 미쳤는데,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유행하면서 유럽 인구의 최소 4분의 1에서 최대 절반 가량의 목숨을 빼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독감 등의 전염병도 인류를 위협했고, 특히 1980년대 들어서부터는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에 의한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 에이즈(AIDA)가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공포의 전염병'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약 3천 만 명이 에이즈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도 매년 수백만 명의 사망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에이즈뿐만 아니라 2002년 12월 홍콩에서 등장해 800명 가량의 사망자를 낳은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사스'(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발병해 수백명이 사망한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 2009년 샌디에이고에서 발병해 20만명 이상이 사망한 신종 인플루엔자 A(H1N1)가 뒤를 잇고 있다.
가장 최근 들어 발생한 전염병으로는 1976년 중앙 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1995년 한 차례 발병했으며 특히 2013년 말 서아프리카를 덮쳐 1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던 에볼라를 들 수 있다. 또 '중동판 사스'로 불리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는 지난 2012년 사우디에서 첫 발병 이후 500명 가량이 사망했는데, 한국에서는 2015년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해 공포에 빠뜨린 바 있다.
여기에다 이번에는 '지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전 세계는 신종 전염병이 거의 매년 발생하는 상황이며, 의학과 과학의 기술에도 불구하고 백신이나 치료법이 없어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노승현 재경일보USA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