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5 08:50 AM
By 전재희
대규모 군사작전 배제 가능성...극우파는 '계속 진격해야'
ICJ 명령 다음날에도 가자 폭격...강공 이어갈수도
가자지구 라파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명령으로 안 그래도 국제적 고립이 심해지고 있는 이스라엘이 또다시 타격을 입게 됐다.
이스라엘 강경파는 이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고 즉각 반발했지만, 이스라엘 지도부가 이제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마냥 외면하기 힘들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협약상 의무에 따라 이스라엘은 라파에서 군사 공격 및 다른 모든 행위를 즉각적으로 중단해야 한다고 한 ICJ의 명령은 이스라엘에 또 다른 타격을 입혔다고 진단했다.
제노사이드는 인종, 국적, 종교, 문화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을 의도적, 제도적으로 말살하려는 인류 최악의 범죄를 뜻하는데, ICJ는 이스라엘의 행위가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생활 여건 전체 혹은 일부에 대한 물리적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가자지구 당국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이후 누적 사망자 수가 전투원과 민간인을 합쳐 3만5천명이 넘었다. 또 수십만명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피란을 거듭하고 있으며, 가자지구 삶의 터전 대부분이 황폐해졌다.
ICJ의 명령은 이런 상황을 반영해 나온 것이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전체 또는 일부의 물리적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안길 수도 있는 군사 행동은 라파 지역에서 하지 않았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일부 극우 지지자들도 ICJ를 비난하면서 정부가 명령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우파 연정 내 대표적인 극우성향 정치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성명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라파 정복, 군사적 압박 강화, 하마스의 완전한 해체라는 하나의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압박한 것이 한 예다.
하지만 유엔 최고법원인 ICJ의 명령으로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양상이 다소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럿거스대 로스쿨의 아딜 하케 교수는 "라파와 그 주변에서의 대규모 군사 작전은 민간인 대량 사망과 주민 이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논의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로켓포 공격에 구체적으로 대응하거나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표적화된 작전은 원칙적으로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어야 한다"면서 ICJ의 명령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제한하면서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ICJ에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한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판사인 디어 틀라디도 의견서를 통해 "국제법의 엄격한 범위 내에서 특정 공격을 격퇴하기 위한 정당한 방어 행동"이 ICJ의 결정에 부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라파 지상전에 난색을 보여 온 미국도 이스라엘을 계속 설득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이스라엘 야당 국민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와 통화하면서 라파 군사작전에 대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피란민 보호와 인도적 지원을 위한 '신뢰할 수 있으며 실행 가능한' 계획이 선행되지 않는 '대규모 군사 작전'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혀왔고, 이달 초에는 대규모 공격을 단행하면 무기와 포탄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22일 의회에서도 "라파에서의 전면적인 군사 공격에 대한 우리의 우려는 여전하다"며 "우리는 하마스가 제기한 도전을 다룰 다른 방법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기자들에게 "지금까지 우리가 본 그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의 작전은 더 표적화되고 제한적이었다. 밀집된 도시 지역 중심부에 대한 대규모 군사 작전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이 이미 라파에서 대규모 작전을 시작했다는 구호단체의 전언도 나오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제한적'이라며 계속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런 기류와 관련 "미국은 이스라엘을 설득해 계획을 수용 가능하게 조정했거나, 이스라엘이 미국의 반대에도 침공을 감행할 것이라는 기정사실에 직면해 사실상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은 ICJ의 명령이 나온 다음 날인 25일에도 라파를 포함한 가자지구에 폭격을 지속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강공을 택하면서 ICJ의 명령을 무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ICJ는 이스라엘이 명령을 이행하게 할 강제적 수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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