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2 03:17 PM
By 전재희
지난 10일 노벨 문학상을 수상자로 소설가 한강이 집중 조명되면서 2017년 뉴욕타임즈(NYT)에 기고한 기고문에 대한 논란이 재확산되고 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그의 노벨상 수상은 축하할 만한 일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소설 속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북한 등 좌익세력들의 폭력과 살인등에 눈 감은 채 너무 편향되어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그의 소설에 대한 평가와 논란은 자연스럽게 2017년 NYT에 기고한 기고문에 대한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7년 10월 7일자 NYT 선데이리뷰 코너에 게재된 기고문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이 기고문은 소설가 한강이 한글로 썼고,이를 영국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씨가 영어로 번역해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만연했던 문재인 대통령 시절이었던 2017년 당시, 청와대도 그의 기고문을 요약해 올리면서 찬반논쟁을 일으키며 적지 않은 논쟁을 낳았었다. 당시, 청와대는 NYT 전문이 아닌 핵심 요약본만 올려서 찬반논쟁이 더 뜨거웠던 측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월간조선>은 NYT 기고문 번역본과 영어 전문을 공개한 바 있다.
본지에서도, 한강의 NYT 기고문에 대한 번역본과 전문을 게재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더불어서 오역의 소지나 번역의 잘못으로 인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Chat gpt를 이용해 번역한 것임을 알려둔다.
미국이 전쟁을 논할 때, 한국은 떤다
승리로 끝나는 전쟁 시나리오는 없다.
서울, 한국 - 며칠 전 우연히 보게 된 뉴스 기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70대의 한 남성이 두꺼운 현금 뭉치를 길가에 떨어뜨렸다. 그 돈을 발견한 두 사람이 이를 나눠 가졌지만 경찰에 붙잡혀 돈을 반납하고 절도 혐의로 기소되었다.
여기까지는 흔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남성이 그렇게 많은 현금을 가지고 다닌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경찰에게 "전쟁이 일어날까 봐 걱정돼서 은행에서 저축한 돈을 막 찾아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4년 동안 매달 조금씩 모아 손자들이 대학에 갈 때 쓰려고 저축한 돈이라고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 이 남성의 청소년기는 전쟁의 기억 속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중산층으로서 평범하게 살아온 그가 저축한 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으로 향할 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해본다. 두려움, 불안감, 무력감, 긴장감.
그와 달리 나는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 속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북한으로 가는 길은 이미 막혀 있었고, 지금도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을 만나거나 접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전후 세대인 우리에게 북한은 때로는 초현실적인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합리적으로는 나를 포함한 남한 사람들은 평양이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으며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단지 정전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환상이나 신기루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지도를 통해나 뉴스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또래 작가 중 한 사람이 말했듯이, 비무장지대는 때로 바다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반도가 아닌 섬에서 사는 것처럼. 이런 기묘한 상황이 60년 동안 지속되면서 남한 사람들은 마지못해 무관심과 긴장이 뒤섞인 모순적인 감정에 익숙해졌다.
때때로 외국인들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신기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한다. 전 세계가 북한을 두려워하며 지켜보는 동안, 남한 사람들은 이례적으로 차분한 모습을 보인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험하더라도,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 가능성을 보도하더라도, 남한의 학교, 병원, 서점, 꽃집, 극장, 카페는 모두 평소와 다름없이 문을 연다. 어린아이들은 노란색 스쿨버스에 올라타 창 너머로 부모에게 손을 흔들고, 고등학생들은 머리를 감고 아직 젖은 상태로 교복을 입고 버스에 오른다. 연인들은 꽃과 케이크를 들고 카페로 향한다.
하지만 이 차분함이 정말로 남한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것을 증명하는가? 모두가 전쟁에 대한 공포를 초월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긴장과 공포가 우리 안에 깊이 파고들어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잠깐씩 드러난다. 특히 최근 몇 달 동안, 우리는 뉴스와 스스로의 불안 속에서 이 긴장이 점차 고조되는 것을 목격해 왔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나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추석을 앞두고 일부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과일 상자 대신 손전등, 라디오, 약, 비스킷을 담은 "생존 가방"을 준비하기도 했다. 기차역과 공항에서는 전쟁과 관련된 뉴스가 방송될 때마다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긴장된 얼굴로 화면을 지켜본다. 우리의 현실은 이렇다. 우리는 불안하다. 우리는 국경 너머 북한이 또 다시 핵실험을 하고 방사능 누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말의 전쟁이 실제 전쟁으로 점차 확대될까 봐 두렵다. 우리가 여전히 도래하기를 바라는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쪽에 5천만 명이 살고 있고 그중 유치원생 70만 명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남한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차분함과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유 중 하나는 세계 그 누구보다도 북한의 존재를 더 구체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독재와 그 아래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분하며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서 상황에 총체적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전쟁은 누구를 위해 벌어지는 것인가? 이런 오래된 질문이 지금 우리 앞에 생생하게 다가와 있다.
내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으며, 군사 독재 정권이 계엄령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던 그때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광주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보스니아,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과 관련된 자료들을 조사해야 했다. 궁극적으로 내가 집중하고 싶었던 것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보편적 인간성의 모습이었다. 인간이 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잔혹하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폭력 앞에서도 결코 인간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묻고 싶었다. 야만성과 존엄 사이에 놓인 아득한 간극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더듬고자 했다. 내가 연구를 통해 깨달은 많은 것 중 하나는 모든 전쟁과 학살에는 인간이 특정 다른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인식하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 그들이 다른 국적, 민족, 종교, 이념을 가졌기 때문일 때. 그리고 이러한 편견을 넘어서는 마지막 방어선은 타인의 고통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어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연민을 넘어서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의지와 행동이 매 순간 우리에게 요구된다는 사실과 동시에 깨달은 것이다.
https://www.nytimes.com/2017/10/07/opinion/sunday/south-korea-trump-war.html
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
There is no war scenario that ends in victory.
SEOUL, South Korea - I cannot turn my thoughts from the news article I happened to see a few days ago. A man in his 70s accidentally dropped two thick wads of cash in the street. Two people who happened upon this bundle of money and shared it between them were caught by the police, made to give up the money and charged with theft.
Up until here, it is still an ordinary story. But there was a special reason this man was carrying so much cash on him. "I'm worried that a war might be coming," he told the police, "so I'd just taken my savings out of the bank and was on my way home." He said that it was money he had saved - a little bit each month - for four years, intended to send his grandchildren to college. Since the Korean War broke out in 1950, war would have been the enduring experience of this man's adolescence. I imagine what he would have been feeling, a man who has lived an ordinary middle-class life ever since, on his way to the bank to take out his savings. The terror, the unease, the impotence, the nervousness.
Unlike that man, I belong to the generation that never experienced the Korean War. Crossing the border to the North was already impossible before I was born, and even now it is forbidden for Southerners to meet or have contact with Northerners. For those of us of the postwar generation, the country known as North Korea is at times felt as a kind of surreal entity. Of course, rationally, I and other Southerners are aware that Pyongyang is only two hours by car from Seoul and that the war is not over but still only at a cease-fire. I know it exists in reality, not as a delusion or mirage, though the only way to check up on this is through maps and the news.
But as a fellow writer who is of a similar age to me once said, the DMZ at times feels like the ocean. As though we live not on a peninsula but on an island. And as this peculiar situation has continued for 60 years, South Koreans have reluctantly become accustomed to a taut and contradictory sensation of indifference and tension.
Now and then, foreigners report that South Koreans have a mysterious attitude toward North Korea. Even as the rest of the world watches the North in fear, South Koreans appear unusually calm. Even as the North tests nuclear weapons, even amid reports of a possible pre-emptive strike on North Korea by the United States, the schools, hospitals, bookshops, florists, theaters and cafes in the South all open their doors at the usual time. Small children climb into yellow school buses and wave at their parents through the windows; older students step into the buses in their uniforms, their hair still wet from washing; and lovers head to cafes carrying flowers and cake.
And yet, does this calm prove that South Koreans really are as indifferent as we might seem? Has everyone really managed to transcend the fear of war? No, it is not so. Rather, the tension and terror that have accumulated for decades have burrowed deep inside us and show themselves in brief flashes even in humdrum conversation. Especially over the past few months, we have witnessed this tension gradually increasing, on the news day after day, and inside our own nervousness. People began to find out where the nearest air-raid shelter from their home and office is. Ahead of Chuseok, our harvest festival, some people even prepared gifts for their family - not the usual box of fruit, but "survival backpacks," filled with a flashlight, a radio, medicine, biscuits. In train stations and airports, each time there is a news broadcast related to war, people gather in front of the television, watching the screen with tense faces. That's how things are with us. We are worried. We are afraid of the direct possibility of North Korea, just over the border, testing a nuclear weapon again and of a radiation leak. We are afraid of a gradually escalating war of words becoming war in reality. Because there are days we still want to see arrive. Because there are loved ones beside us. Because there are 50 million people living in the south part of this peninsula, and the fact that there are 700,000 kindergartners among them is not a mere number to us.
One reason, even in these extreme circumstances, South Koreans are struggling to maintain a careful calm and equilibrium is that we feel more concretely than the rest of the world the existence of North Korea, too. Because we naturally distinguish between dictatorships and those who suffer under them, we try to respond to circumstances holistically, going beyond the dichotomy of good and evil. For whose sake is war waged? This type of longstanding question is staring us straight in the face right now, as a vividly felt actuality.
In researching my novel "Human Acts," which deals with the 1980 Gwangju Uprising, when the military dictatorship turned to the armed forces to suppress student protests against martial law, I had to widen the field to include documents related not only to Gwangju but also to World War II, the Spanish Civil War, Bosnia and the massacres of Native Americans. Because what I ultimately wanted to focus on was not one particular time and place but the face of universal humanity that is revealed in the history of this world. I wanted to ask what it is that makes human beings harm others so brutally, and how we ought to understand those who never lose hold of their humanity in the face of violence. I wanted to grope toward a bridge spanning the yawning chasm between savagery and dignity. One of the many things I realized during my research is that in all wars and massacres there is a critical point at which human beings perceive certain other human beings as "subhuman" - because they have a different nationality, ethnicity, religion, ideology. This realization, too, came at the same time: The last line of defense by which human beings can remain human is the complete and true perception of another's suffering, which wins out over all of these biases. And the fact that actual, practical volition and action, which goes beyond simple compassion for the suffering of others, is demanded of us at every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