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6 07:07 AM
By 전재희
구글, 메타, 아마존은 요구를 늘리고 혜택은 줄이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테크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일자리 안정성, 호화로운 복지, 그리고 다른 산업에서는 보기 힘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직장 문화를 의미했다.
하지만 요즘 테크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평범한 직장과 다를 바 없어졌다. 이제는 사무실 부엌에 방목 소고기 육포가 없어진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은 끊이지 않는 해고 공포, 길어진 근무 시간, 그리고 같은 급여에 늘어만 가는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다.

메타 플랫폼스는 최근 성과를 기준으로 직원의 5%를 해고했으며, 직원 출장에도 새로운 제한을 걸었다. 아마존은 직원들이 일하는 동안 컴퓨터 사용을 감시하고 있다. 구글은 일부 팀에서 인력 이탈이 발생해도 충원하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테크 업계가 일터 문화를 선도했다. 탁구대, 워크숍 여행, 케일칩, 그리고 후드티 차림이 정상적인 복장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퍼졌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급변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테크 업계의 인재 전쟁은 너무 치열해서 일부 경우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해고된 동료들의 업무까지 대신 떠맡는 상황이다. 어떤 이들은 해고된 후 다시 고용되었지만, 이번에는 급여 인상이나 스톡 옵션을 받을 수 없는 계약직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이직만 해도 자연스럽게 연봉이 올랐지만, 요즘은 급여 인상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채용 제안을 철회당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 수년간 노동자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지만, 이 흐름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정점을 찍었다. 메타, 세일즈포스 같은 대기업들은 지나치게 많은 인력을 채용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 대규모 해고가 시작되었다.
9년 동안 메타에서 일했고 현재는 대형 테크 기업 출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재정 상담을 하는 안드레 나더는 이렇게 말한다.
"2022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절대 해고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지금은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사들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가 힘들어요."
테크 업계는 여전히 높은 급여를 제공하지만, 오랜 근속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회사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낀다. 경영진은 이제 월스트리트가 원하는 실적을 맞추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매출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인공지능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현금 흐름에 부담이 생겼다. 산업이 성숙해지면서 '조용히 일하고 불평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회사의 경영 철학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경영진도 숨기지 않는다.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는 팟캐스터 조 로건에게 "기업 문화에 다시 남성적 에너지를 불어넣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문화가 너무 무기력해졌다고 주장했다.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올해 2월 직원들과 만나 "주당 60시간이 생산성의 최적 지점"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보도)
아마존웹서비스(AWS)에서 일하는 한 제품 매니저는, 팀의 고객 수가 급격히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 프로젝트가 우선시되면서, 기본적인 지원조차 받기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결국 10년 만에 다시 코드를 작성하게 됐는데, 이는 원래 다른 팀이 담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마존 대변인은 회사가 사업 필요성과 우선순위에 따라 채용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메타에서는 해고된 뒤 다시 채용된 한 리크루터가 예전과는 다른 조건을 받았다. 그는 '단기 계약직'으로 분류되어 승진, 급여 인상, 스톡 옵션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여러 명이 나눠 맡았던 업무량을 혼자 처리하고 있다.
(회사는 이를 '민첩성'이라고 부른다.)
구글에서 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던 케이트 스미스는 테크 업계가 다른 업계와 별반 다를 바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이 많아졌고, 지원은 줄어들었어요."
스미스는 이 상황을 새로운 경험을 쌓는 기회로 삼으려 했지만, 오래 일해 온 구글러들은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다들 '영광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어요."
인적자원 분석가 조쉬 버신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일어난 기업들의 비용 절감 문화가, 테크 업계 전반에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퍼뜨렸다고 지적한다.
"요즘 기업들은 '수익'이 아니라 '직원당 수익'을 이야기합니다."
조직 구조를 단순화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관리직 층을 줄이고 팀을 통합하면서, 한 관리자가 30명 넘는 직원을 직접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데이비드 마클리, 전 아마존 직원)
"이건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AI와 '조직을 축소하면 더 효율적이다'는 사회적 서사 때문이에요."
현재 해고는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린 기업조차 인력을 줄이고 있다. 2025년 현재 100개 이상의 테크 기업에서 5만 명 넘는 직원이 해고당했다. (출처: Layoffs.fyi)
갈 곳이 없다
아마존은 원래부터 다른 테크 대기업만큼 직원들을 어르고 달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직원들이 어느 정도 신뢰받고 자율권을 누린다고 느끼던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감시가 강화되는 조짐이 보인다. AWS에서 근무했던 리즈 기옌은 자신의 컴퓨터 화면에 "당신의 화면이 관찰되고 있습니다"라는 팝업이 뜬 것을 목격했다.
또 다른 AWS 직원은 자신의 업무용 컴퓨터에 키보드 입력 감지, 웹사이트 방문 기록 추적, 화면 캡처가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존 대변인은 해당 프로그램이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직원 감시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때 원격 근무를 강력한 채용 수단으로 삼았던 테크 기업들은 이제 사무실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아마존은 대부분의 사무직 직원에게 주 5일 출근을 요구하며, 이는 다른 테크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주 3일보다 강하다. 구글도 일부 원격 근무자들에게 "사무실로 돌아오거나 퇴직 패키지를 수령하라"고 통보했다.
(구글 대변인은 "사무실 근처에 거주하는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는 협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직을 시도하는 노동자들도 협상력이 크게 약해졌다. 사용자 안전 전문가로 일하는 한 여성은 8차례 인터뷰를 거쳐 대형 테크 기업으로부터 구두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연봉 12% 인상을 요청하자, 회사는 제안을 철회해버렸다.
AI 분야에 종사하는, 특히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은 보수를 크게 올리고 있지만, AI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직을 해도 예전만큼의 보수를 기대할 수 없다.
페퀴티(Pequity)라는 소프트웨어 보상 스타트업의 창업자 케이틀린 크놉은, 요즘 많은 기업들이 보너스 같은 "단기적이고 보장되지 않은" 보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방식은 기업이 해마다 보상 지출을 쉽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라진 혜택
약 15년 전, 구글은 연말 올핸즈 미팅에서 직원들에게 1,000달러짜리 현금 다발을 던져줬다. 메타에서는 무료 세탁과 드라이클리닝 서비스를 제공했고, 직원들은 회사 결정에 항의해 집단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출장, 휴가, 출산휴가에 있어 직원들의 자율을 존중했다.
그러나 이런 호화로운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구글의 금요일 올핸즈 미팅은 더욱 각본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직원용 굿즈 주문 한도를 설정했고, 출산휴가 정책도 후퇴했다. 6개월 이상 휴가를 쓰는 것은 이제 경력에 불리한 것으로 간주된다.
메타는 무료 세탁 서비스와 함께 팀을 위한 여행 경비, 굿즈(후드티, 재킷 등) 예산을 삭감했다. 간식의 질과 양도 눈에 띄게 줄었다. (방목 소고기 육포와 인기 에너지 음료는 사라졌다.)
최근 메타의 저커버그는 직원들과의 Q&A 세션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글은 오프사이트 행사(와인 테이스팅, 고카트 등)에 쓰이던 '펀 펀드(fun budget)'를 대폭 줄였다. 무료 카페 운영 시간도 단축됐고, 기술 지원팀과 노트북 교체 주기도 줄어들었다.
(구글 대변인은 "재정 책임을 고려한 조정"이며, 여전히 업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2월 구글은 "소수 인종 및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 채용 목표"를 공식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구글에서 10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해고된 니콜라스 휘태커는 "예전 구글이 내세우던 원칙들은 이제 많이 변했다"며, 현재 구글 직원들 사이에서는 "윤리적 상처(moral injury)"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저는 이 모든 변화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구글이 한때 추구하던 가치와 지금은 확실히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