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8 07:24 AM

WSJ "미국 명문대학들,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비공식 연합 결성"

By 전재희

공식 성명과는 별도로, 대학 지도부가 비공개 전략 논의

미국 내 유수 대학들의 지도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연구비 삭감과 학문적 독립성 침해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연합체를 구성했다고 사안을 잘 아는 관계자들을 인용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 단독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이 비공식 모임에는 현재 아이비리그를 비롯해 주로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지지주) 내에 있는 10여 개의 명문 사립 연구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하버드를 상대로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대대적인 문화 개혁 요구 목록이 공개된 이후, 대학들은 이를 학문적 자율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대응 전략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른바 '콜렉티브(collective)'라 불리는 이 모임은 최근 대학 단체들이 발표한 공개 성명과는 별개로, 보다 조용하고 효과적인 대응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교육정책에 저항하는 하버드

(트럼프 행정부의 교육정책에 저항하는 하버드. AP)

참여 인사들은 대학 총장과 이사회 임원 등 최고위급 인사들로,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협상 시 넘지 않을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다양한 정부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시뮬레이션을 진행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유대주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부 대학에 대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연구 자금 지원을 중단하거나 취소한 바 있다.

이들 대학은, 과거 일부 대형 로펌들이 정부 요구를 수용하면서 다른 로펌들까지 연쇄적으로 굴복했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일단 선례가 만들어지면 나머지 대학들도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역시 대학들이 단결해 저항할 것을 우려해왔으며, 지난 두 달 동안 적어도 한 대학에 다른 대학들과 협력하지 말라는 경고를 전달하기도 했다.

백악관은 이와 관련해 언론의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현재 이 연합체는 ▲입학, ▲교수 임용, ▲교과과정 운영 등 학문적 독립성을 양보하지 않는 것을 핵심 '레드라인'으로 설정했다.

참여 대학 중 한 관계자는 "우리는 몇몇 학교가 300년 이상 이어져온 전통을 갖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고작 취임 3개월이 지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고등교육 단체인 American Council on Education의 테드 미첼 회장은 "이런 비공식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알고 있으며, 매우 고무적"이라며, "기관들이 정부 조치의 영향을 공유하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원칙들을 함께 정립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연합체 구성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향후 참여 대학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참여자들은 자신들을 '저항의 중심(ground zero of resistance)'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당시 "급진 좌파로부터 우리의 위대한 교육기관들을 되찾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후 행정부는 '반유대주의 퇴치 태스크포스(Task Force to Combat Antisemitism)'를 출범시켜 대학들에 대해 강력한 개입을 시도했으며, 특히 콜롬비아 대학은 상당수 정부 요구를 수용하기도 했다.

연합체 참여 대학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지만, 특히 국제학생 유치 금지 조치에는 준비가 부족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제학생들은 많은 대학들에 재정적, 지적 측면 모두에서 큰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국제 교수 채용을 방해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비록 연합체는 대학 운영의 독립성을 포기할 의사는 없지만, 겉으로만 변화를 준 것처럼 보이게 하여 트럼프 행정부가 '성과'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외형적 양보는 고려하고 있다는 참여자의 전언도 나왔다.

연합 움직임은 지난 2월,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들의 연구 간접비 지원 한도를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이후 3월 초 법원이 이를 일시 정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콜롬비아 대학에 대한 연구비 동결 사태가 발생하자, 프린스턴 대학 총장 크리스토퍼 L. 아이스그루버는 《애틀랜틱》에 기고문을 실어 대학들의 집단 대응 필요성을 시사했다.

그는 "콜롬비아에 대한 공격은 학문적 탁월성과 미국의 연구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라며, "대학과 그 지도자들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강력히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대학 총장들은 이러한 발언을 반기면서도, 공개 지지에 나섰다가는 정부의 보복 조치를 초래할까 우려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하지만 이 논의를 계기로, 총장, 이사, 고위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비공식 모임이 기존 회의 및 학술대회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다른 대학들로 확대되면서, 일부 이사들은 서로 유대감을 느끼고 관련 소식을 소셜미디어로 공유하기도 했다.

특히 4월 중순, 정부가 하버드에 장문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하버드가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이후 연합체의 결속은 더욱 강화됐다. 정부는 하버드의 입학 및 채용 프로세스, 교수진의 정치적 다양성 등을 감사할 권한을 요구했으나, 하버드 알란 가버 총장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의 연구비 22억 6천만 달러를 삭감하고, 대학의 세금 면제 지위 및 국제학생 비자 발급 권한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했다. 또한 외국인 기부 기록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하버드는 이에 맞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며, 첫 심리가 월요일 보스턴 연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부 대학만 참여하는 연합체가 형성되면서 '참여 대학'과 '비참여 대학' 간 새로운 갈등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단결이 필요한 시기에 대학들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현재 이 연합체는 조용히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학계 내 공개 저항 움직임과는 구분된다. 한편 공개 저항 사례로는, 미국대학및대학원협회(AAC&U)가 정부의 "전례 없는 개입과 정치적 간섭"을 규탄하는 청원서를 발표했으며, 현재까지 500명 이상의 고등교육 지도자들이 서명했다. 또한 미시간 대학교, 러트거스 대학교, 인디애나 대학교 등 빅텐(BIG10) 소속 주요 대학의 교수단체들도 정부 공격에 맞서 대학이 연합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