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0 08:02 AM

미국 최고 부유 재단들, 트럼프의 공격 가능성에 맞서 연합

By 전재희

법률적 대응 및 전략 논의 중... 법률 사무소·대학의 전철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

핵심요점

  • 미국의 부유한 재단들이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면세 지위가 위협받을 가능성에 대비해 협력하고 있다.
  • 일부 재단은 이미 법률 및 커뮤니케이션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고 있다.
  • 트럼프 행정부는 비영리 단체의 면세 지위 전반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특정 재단의 면세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공언한 적은 없지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민간 재단들이 트럼프 행정부가 자선재단의 세금 면제 자격을 박탈하려는 시도에 대비해 비공식적으로 연합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 보도했다.

게이츠 재단 본부

(게이츠 재단 본부. WIKIPEDIA)

WSJ에 따르면, 포드 재단, 게이츠 재단, 찰스 코크 재단 등 정치적 성향이 다른 다양한 재단들이 면세 지위가 위협받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 중이라고 이 노력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전했다. 재단들은 면세 지위가 공격받을 경우 집단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법률 대리인을 고용할지를 검토하고 있다.

또한 일부 재단은 이번 대응에 필요한 법률 및 커뮤니케이션 관련 비용의 일부를 이미 부담하고 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정 재단의 면세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비영리 단체 전반의 면세 자격에 대해 도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버드대학교에 면세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으며, 특정 비영리 단체에 대한 추가 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면세 지위를 상실하면 재단이 기부금을 유치하고 사회에 기부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 고유의 제도인 제도화된 자선(philanthropy)이 약화될 수 있다고 재단 측은 우려하고 있다. 대부분의 재단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금이 없고, 세금 공제를 통해 기부를 장려하는 구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D. & 캐서린 T. 맥아더 재단의 존 폴프리(John Palfrey) 대표는 "우리는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할 일을 하게 내버려 달라'는 입장"이라며, "만약 행정부가 재단의 기부 활동을 이유로 면세 자격을 박탈하려 한다면, 명확한 법적 논리를 바탕으로 전면 대응할 것이며, 승소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게이츠 재단 대변인은 "비영리 단체들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선 부문의 면세 지위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단합은 고등교육 분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대학 이사회와 총장들 사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연구 자금 공격과 학문적 자유 침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트럼프의 행정명령과 비영리 단체에 대한 조사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1일 행정명령을 통해, 자산이 5억 달러 이상인 대형 비영리 단체나 재단을 포함해 최대 9곳에 대한 조사 대상을 5월 21일까지 지정하라고 연방 기관에 지시했다. 이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프로그램을 명목으로 불법적인 차별이나 우대 정책이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조치다. 이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대형 재단과 비영리 단체에 대한 조사를 공식 지시한 첫 사례라고 재단 관계자들은 말했다.

미국 국세법 501(c)(3) 조항에 따라 면세 자격을 가진 비영리 단체들은 특정 운영 규정을 따라야 하며, 그 대가로 기부자들은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고, 재단은 순이익에 대한 세금을 면제받는다.

추가적인 세금 조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

재단 관계자들은 연방 정부가 앞으로 더 많은 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재단은 정기적인 소득세는 면제되지만, 연간 순투자 수익에 대해 1.39%의 소비세(excise tax)를 내고 있으며, 매년 자산의 약 5%를 공익 목적에 지출해야 한다.

일부 관계자들은 의회가 대학 기금(endowment)에 대한 소비세를 인상하려는 것처럼, 재단에 대한 세금도 인상하거나 의무 지출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맥아더 재단의 폴프리는 "기부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501(c)(3) 면세 자격을 박탈하려 한다면 이는 국민의 기부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재단들도 향후 자신들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번 연합에 참여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2023년 기준, 재단들은 미국 자선 단체들에 1,00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으며, 이는 개인 기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진보 성향 재단, 표적 우려

포드 재단 등 일부 진보 성향 재단은 특히 이번 행정부의 집중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품고 있다. 포드 재단의 대표인 대런 워커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활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

광범위한 연대 형성... 법률 대응도 개별 및 집단 병행

이번 연합을 '연합체(coalition)'라고 부르는 이도 있고, 다소 느슨한 연대라고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1월 21일 행정명령 이후, 지역사회 재단, 기업 재단, 종교 기반 재단 등 다양한 단체들이 전국 거의 모든 주에서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일부 논의는 전국 재단 연합체인 Council on Foundations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단체의 대표인 캐슬린 엔라이트(Kathleen Enright)는 "정책에 있어 의견 차이는 있어도, 재단들이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몇 재단들은 이미 개별적으로 법률 자문을 구하고 있으며, 향후 집단 대응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들은 행정부로부터 '조직적 대응이 되어 있는 집단'으로 인식돼 표적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기존 자금 지원 중단 및 법안에 대한 우려

일부 재단은 다른 조치들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말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테러를 지원하는 조직'의 면세 지위를 박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욕 소재 비영리 단체인 Vera Institute of Justice의 닉 터너 대표는 "이번 행정부는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벌이는 시민 사회를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 기관은 이민자들을 위한 법률 지원과 대규모 수감 종식 활동을 벌이며 여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연방 정부는 4월 이 기관의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정부 효율성부(DOGE)는 4월 Vera에 조사팀을 배정하겠다고 통보했지만, Vera가 이미 연방 자금 지원이 중단됐음을 알리자 DOGE는 물러섰다. DOGE는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비상 대응: 새로운 자선 구조 논의도 진행 중

기존 501(c)(3) 구조가 무력화될 경우를 대비해, 대체 자선 구조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약 250명의 재단 및 비영리 단체 책임자들이 참여한 Block & Build Funder Coalition은 2024년 여름부터 다양한 전략을 논의해 왔다.

이 연합의 일원인 여성기부자네트워크(Women Donors Network)의 리나 바라캇(Leena Barakat) 대표는 "지금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과감한 기부를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비 오는 날'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