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4 07:34 AM

다보스의 왕, 클라우스 슈밥의 몰락

By 전재희

세계경제포럼(WEF) 설립자 클라우스 슈밥, 위협 메일과 재정 부정 의혹 속 퇴진...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

수십 년 동안 다보스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려온 클라우스 슈밥의 통치는, 그가 최근 금요일 오후 세계경제포럼(WEF) 이사회에 이메일을 전송하며 갑작스러운 종말을 맞았다.

슈밥은 지난 2024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로 WEF 내 여성과 흑인 직원들에 대한 유해한 직장 문화가 드러난 뒤, 조직에서 점진적인 퇴장을 준비 중인 듯 보였다. 그러나 4월 18일 금요일, 이사회 감사위원회는 슈밥과 그의 아내 힐데에 대한 새로운 내부고발자들의 의혹에 대해 조사를 개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WSJ이 보도했다.

이에 격분한 슈밥은 감사위원회에 두 단락짜리 이메일을 보내, 이사들을 조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결정으로 조직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보스 설립자 클라우스 스왑

(다보스 설립자 클라우스 스왑. WEF웹사이트 )

이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귀하는 향후 24시간 내에 제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한 유감의 뜻을 밝히며 이사회에 보낸 메모를 철회할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려면 형사 고소를 고려 중이라는 점을 언급하시면 됩니다."
말미에는 "진심을 담아, 클라우스"라고 서명했다.

이 위협성 이메일은, 그와 힐데 슈밥이 수년 동안 포럼의 재정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새로운 내부고발 의혹에 대한 이사회의 대응을 막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 이메일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올해 87세인 슈밥은 현재 자신이 창립하고 철저히 통제해 온 조직과 충돌하고 있다. 포럼의 변호인단은 그에게 이메일, 재무 문서 등 자료를 파기하지 말라고 통보했고, 직원과의 접촉이나 포럼의 컴퓨터 시스템 사용도 금지했다.

슈밥은 성명을 통해 자신과 아내는 제기된 모든 의혹을 부인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감사위원회와 이사회의 결정이 충분한 논의 없이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 55년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해왔으며, 언제나 최고의 윤리적 기준을 지켜왔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포럼 측은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독립적으로 조사하기로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했으며, 이는 스위스 규제기관의 승인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과정은 철저하고 신속하게 진행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권좌에서의 추락

다보스 포럼은 매년 전 세계 리더와 금융 거물, 셀럽들이 모이는 행사로, 슈밥은 그 중심에서 글로벌 의제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2024년 들어 이사회 내에서는 점차 슈밥의 후계 구상과 권력 이양 논의가 활발해졌다.

슈밥은 일상적인 채용 결정부터 젊은 층 유치 전략까지 과도하게 개입하며, 포럼의 최고 경영자인 보르게 브렌데와 잦은 갈등을 빚었다. 이사회는 슈밥의 오랜 친구인 전 네슬레 CEO 피터 브라벡을 통해 은퇴를 설득했지만 슈밥은 본인이 직접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주장했다. 포럼 정관에도 "설립자가 후계자를 지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2024년 중반, 저널의 직장 문화 관련 보도가 나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슈밥은 포럼 CEO 자리에서 물러나 비상임 회장직을 맡겠다고 밝혔고, 언론사 측에 해당 보도가 불만족스러운 전직 직원들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항의하는 편지를 보냈다.

2024년 6월 보도된 저널의 기사에는 성희롱, 인종차별, 임신 차별 등 구체적인 피해 사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포럼 측은 성명을 통해 보도를 부인하고 명예훼손 소송을 경고했다.

일부 기업 파트너(Pfizer, Mastercard 등)는 포럼 측에 해명을 요구했고, 이사회는 AXA CEO 토마스 부베를, Accenture CEO 줄리 스위트, Carlyle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등이 포함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미국 법무장관 출신 에릭 홀더가 속한 Covington & Burling과 스위스 로펌 Homburger가 조사를 맡았다.

조사 결과와 가족 문제

수개월간의 조사가 끝나자, 에릭 홀더는 이사회에 인사 개편을 권고했다. 특히 슈밥의 아들 올리비에 슈밥에 대해서는 즉시 퇴출을 요구했다. 그가 직속 부하의 성희롱 사건을 알고도 묵인하고, 조사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슈밥은 아들의 퇴출에 반발했고, 딸 니콜이 이미 조직을 떠난 상황에서 아들까지 제거되자 보복을 암시했다. 최종적으로 이사회는 올리비에가 "사임"하는 형태로 타협했다. 슈밥은 자신이 이 논의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이름이 언급되면 사임하겠다고 위협한 정황이 있었다.

이후 브렌데 CEO는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고, 슈밥의 측근 두 명의 권한도 줄었다. 이에 슈밥은 거세게 반발하며, 일부 인사는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사회 부의장 브라벡은 그에게 "물러나라"고 직접 말했다.

2025년 4월 2일, 슈밥은 비로소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2주 뒤, 새로운 내부고발 메일이 도착했다.

내부고발자들의 폭로

이 이메일은 전·현직 직원들을 대표해 작성되었으며, 총 11개의 문제를 지적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포럼 자산과 재원을 사적으로 사용한 정황
  • 여성 직원들에게 불쾌한 언행
  • 아들 올리비에의 성희롱 사건 은폐
  • 호화 부동산 '빌라 문디'에 수천만 달러 투자 → 아내 힐데가 독단적으로 통제
  • 슈밥의 노벨평화상 수상 로비 시도 → 조직 자원을 사적으로 사용

포럼은 2018년 약 3천만 달러를 들여 빌라 문디를 매입했고, 추가로 2천만 달러의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내부고발자들은 힐데가 해당 건물의 한 층을 사실상 가족 전용 공간으로 지정하고, 직원 이용을 제한했다고 주장했다.

슈밥 대변인은 이러한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노벨상 추진 역시 조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시도"였음을 주장했다.

최종 파국

2025년 4월 18일, 감사위원회는 새 조사를 개시하겠다고 이사회에 통보했다. 슈밥은 모든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했고, 앞서 조사에서도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XA CEO 부베를은 "문제가 없다면 조사를 수용하면 된다"고 일축했다. 이에 슈밥은 위협적인 이메일을 보냈고, 이사회는 즉각 해당 이메일을 공유했다.

브라벡은 오랜 친구 슈밥에게 전화해 강하게 비판했고, 슈밥은 이사회에 사임 이메일을 보내며, 자신의 업적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으며 더는 확인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4월 20일 부활절 일요일, 이사회는 긴급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새 조사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자료 폐기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다.

4월 21일 월요일, WEF는 클라우스 슈밥이 즉시 의장직에서 사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대변인은 슈밥이 이사회에 보낸 이메일이 "위협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현재 내부고발자(익명 작성자)를 상대로 스위스에서 형사고소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