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4 06:53 AM
By 전재희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중국의 희토류 자석 수출 규제로 인해 수 주 내 일부 생산라인을 멈춰야 할 위기에 몰리자, 이를 회피하기 위한 비상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폭스바겐, 포드 등 주요 전통 및 전기차 제조사들과 부품 공급업체들은 일부 부품 생산 공정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우회 전략을 검토 중이다. 이는 자석이 아닌 완성 부품에 대해서는 수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제작한 전기모터를 중국으로 보내 자석을 장착한 후 다시 역수입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 내 한 자동차 업체의 공급망 관리자는 "자석만 따로 수출하는 것은 막혀 있지만, 중국 내에서 모터에 조립된 상태로 나가면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4월부터 디스프로슘과 터븀 등 고온에서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희토류 자석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으며, 이들 광물은 전 세계 공급량의 90% 이상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해당 자석은 전기차 모터는 물론 스마트폰, 전투기 등 현대 기술의 핵심 부품으로 사용된다.
포드는 지난 5월, 희토류 부족을 이유로 시카고 조립공장에서 SUV 익스플로러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 포드 대변인은 "자석 공급 지연이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당초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90일간 관세 유예 합의에 따라 자석 수출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수출 허가 승인 속도를 늦추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중국은 AI 반도체 수출 제한과 중국 유학생 비자 취소 등 미국의 조치가 오히려 불공정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희토류 자석 수출이 사실상 멈춘 현재, 일부 공장의 가동 여부는 향후 몇 주 내 희토류 자재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 지난 5월에는 주요 자동차 업체 및 부품 공급사들이 미국 정부에 "중국산 자석 공급 없이는 국내 자동차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유럽 및 아시아의 대체 공급처 확보에도 나서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수요를 충족할 수준의 생산 능력을 가진 곳이 부족한 상황이다. 일부 기업은 차량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 수요를 줄이기 위해 고급 사양 옵션 제거, 오래된 전기 모터 기술 복귀 등의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과거에 사용하던 전기모터는 희토류 자석이 필요 없지만, 현재 기술에 비해 효율성과 비용 면에서 불리해 이미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사용을 중단한 상태다. 또한 일부 차량에서는 전동 시트나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 등 자석이 들어가는 고급 기능을 제외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 자동차 산업이 얼마나 깊이 중국 희토류 정제 능력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은 희토류 원광을 정제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기술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문제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과 인도 자동차 업체들 역시 중국발 공급 차질로 인해 생산 중단 가능성을 경고했고, 유럽 제조사들도 "수출 허가가 일부 승인되었으나 생산 정상화를 위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미국 내에서는 희토류 자석 사용이 특히 많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일반 가솔린 차량으로 생산을 전환하려 해도, 연비 규제와 배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벌금을 물게 되거나 규제 크레딧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테슬라나 리비안 등 EV 제조사로부터 구매 가능한 규제 크레딧도 이미 2027년까지 매진된 상태다.
자석 수급 문제로 인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점점 현실화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생산 중단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