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2 08:11 AM

워너 제국 쪼개는 데 이른 자슬라브 CEO...그가 꿈꾼 미디어 통합, 왜 실패했나

By 전재희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의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가 3년 전 야심차게 성사시킨 초대형 미디어 합병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회사는 두 개의 독립된 법인으로 분리될 예정이다고 월스트리트저널( WSJ)이 보도했다. 

WSJ의 보도에 따르면, 자슬라브 CEO는 이번 분리를 두고 "이제는 보다 건강하고 안정적인 비즈니스들이 분리되어 각자 성장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고 말했지만, 이번 결정은 사실상 그의 통합 전략이 시장의 변화와 막대한 부채 앞에 무너졌음을 자인한 셈이다.

■ 자슬라브의 '몰타의 매'는 결국 손에 넣지 못한 꿈이었다

자슬라브는 고전 영화 '몰타의 매(The Maltese Falcon)'를 인생의 비유처럼 여긴다. 영화 속 황금 매 조각상처럼, 그는 디스커버리(Discovery)와 워너미디어(WarnerMedia)의 합병을 통해 헐리우드의 전통과 미래를 동시에 거머쥐려 했다. 그러나 그 꿈은 채 이루어지지 못했다.

WB CEO 자슬라브

(WP CEO 데이빗 자슬라브)

그는 2022년 AT&T로부터 워너미디어를 분리해 디스커버리와 합병하는 초대형 거래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 거래로 인한 500억 달러 이상의 부채는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의 발목을 잡았다. 합병 이후 회사는 막대한 비용 절감 조치를 단행했고, 주가는 60% 가까이 하락했으며, 내부 반발과 외부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 결국 두 회사로 분할...자슬라브는 스튜디오·스트리밍 부문 맡는다

이번 분할에 따라 워너 브라더스 영화사, HBO, 스트리밍 서비스 'HBO Max'를 중심으로 한 스튜디오/스트리밍 사업 부문은 자슬라브가 계속 이끈다. CNN, TNT, 푸드 네트워크 등 케이블 채널 중심의 글로벌 네트워크 사업 부문은 별도 법인으로 출범하며, 이 회사는 스튜디오 부문 지분 20%를 보유하게 된다.

회사는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5억 달러 이상 비용을 절감했고, 수천 명의 직원이 해고됐다. '배트걸'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 프로젝트와 CNN+ 스트리밍 서비스도 취소됐다.

자슬라브 본인은 지난 3년간 1억 4천만 달러의 보수를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직원들은 그가 뉴욕 닉스나 LA 레이커스 농구 경기장에서 유명 인사들과 관람하는 모습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 시장과 내부 신뢰 모두 잃어..."합병은 처음부터 무리수였다"

이머커터(Emarketer)의 콘텐츠 부문 부사장 폴 버나는 "합병 자체가 무리였으며, 브랜드 간 궁합도 좋지 않았다"며 "결국 자슬라브는 자신이 만든 구조를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회사는 지난해 케이블 네트워크 가치 하락에 따라 91억 달러의 손실 처리를 감수해야 했다. 주가는 급락했고, 행동주의 투자자의 압박 속에 사모펀드 출신 이사를 새로 이사회에 영입하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섰다.

■ 실리 추구한 선택? NBA 중계권은 포기..."미래 대비 위해"

자슬라브는 NBA 중계권을 두고 "꼭 필요하진 않다"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왔다. 결국 NBA는 TNT와 결별하고 ESPN, NBC유니버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워너 측은 TNT 등 케이블 채널의 유료 가입 배급 계약을 콤캐스트와 차터와 성공적으로 갱신했으며, 이는 미래 수익 기반을 마련하는 긍정적 신호로 평가된다.

■ 스트리밍은 회복세...하지만 시련은 여전

'Max'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한 통합 스트리밍 플랫폼은 방향성에 혼선을 겪었다. 결국 HBO의 브랜드 가치를 살리기 위해 올해 초 'HBO Max'로 이름을 다시 바꿨다.

스트리밍 부문은 지난해 EBITDA(세전영업이익) 기준 1억300만 달러에서 6억7700만 달러로 성장했으며, 올해는 13억 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인기 HBO 콘텐츠, 영화 '마인크래프트'와 '시너스' 등의 흥행도 긍정적이다.

이 여름에는 새 슈퍼맨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며, 향후 흥행에 따라 스튜디오 부문의 독립성과 성장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 자슬라브의 마지막 목표는 매각?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현재 총부채 340억 달러 수준까지 감소시킨 상태이며, 그중 대부분은 케이블 네트워크 법인이 떠안게 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분할이 끝이 아니라고 본다. 업계에서는 "자슬라브의 최종 목표는 두 회사를 모두 매각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