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5 09:44 AM
By 전재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대규모 감세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며 경제 성장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그 이면에는 '재정 지배(Fiscal Dominance)'라는 위험한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금리 인하를 강하게 요구하며, 막대한 적자 재정을 저금리로 방어하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는 정통 경제학의 예측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교과서적 이론에 따르면, 대규모 차입은 장기 금리를 상승시키고, 이는 감세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연쇄작용을 끊기 위해 연준을 공개 압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인물을 연준에 앉히겠다"고도 밝혔다.
■ '재정 지배'란 무엇인가
'재정 지배'는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이나 고용 목표가 아니라, 정부의 재정 수요를 충족하는 데 정책 우선순위를 두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아르헨티나와 같은 신흥국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며, 결과는 인플레이션, 금융위기, 경기 침체라는 삼중고로 이어진다.
현재 미국이 재정 지배의 완전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장은 점점 그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감과 대규모 감세의 결합은 최근 미국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 트럼프의 연준 장악 시도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저금리 지지자"라고 자처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금리 인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자신의 재정정책을 뒷받침할 통화정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국채 발행을 단기물 위주로 전환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단기물은 금리가 오르면 재정에 더 빠르게 타격을 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금리 인하로 방어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경질하려다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일단 물러났지만, 곧 차기 연준 의장 지명을 통해 우회 압박에 나섰다. 시장은 이른바 '그림자 의장(Shadow Chair)'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으며, 실제로 차기 의장 후보군 일부는 이미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지지하고 있다.
■ 채권시장, 이미 반응 시작
5월 공화당이 공개한 '트럼프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 초안은 미국의 재정적자를 향후 10년간 국내총생산(GDP)의 6.4%에서 6.8%로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됐다. 최종 통과된 법안은 적자를 GDP 대비 7.1%, 만약 감세가 영구화될 경우 7.9%까지 상승시킬 수 있다.
이러한 재정 전망에도 불구하고,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55%에서 4.35%로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이 완만하고 고용시장에 일부 약세 신호가 감지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고, 연준이 향후 트럼프 우호 인사로 교체될 수 있다는 기대가 시장 심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차기 연준 의장은 현재보다 적자에 대해 덜 우려하며, 향후 몇 년간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단기 효과 vs. 장기 리스크
단기적으로는 '재정 지배'가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중앙은행이 정치권의 명령에 따르고 독립성을 상실하면, 결국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이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변화시킬 만큼 강력하다고 보지 않는다. 일부 투자자들은 "설사 트럼프가 압박해도 연준은 자율적 판단을 유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또 연준이 실제로 금리를 억제한다면, 시장도 거기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관건은 연준이 대통령의 의중이 아닌, 독립적 판단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대통령이 중앙은행을 반복적으로 압박하고, 은근히 정치적 인사를 임명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그 결과는 반드시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다만, 그것이 대통령 재임 중 일어나지는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