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9 07:52 AM
By 전재희
아사드 정권 하에 사이드나야 감옥은 대량 학살의 현장으로 변모
"전 세계가 수치스러워해야 할 상징"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사이드나야 감옥이었다. 이 감옥은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정권 하에서 수천 명이 조직적으로 고문당하고 처형당한, 21세기 최악의 국가 주도 학살의 상징이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새벽녘 감옥 문이 부서지고 잠금장치가 총격으로 풀렸을 때, 살아남은 일부 수감자들이 세상 밖으로 걸어나왔다. 이들은 곧 전 세계가 수년간 알고도 외면했던 진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사이드나야 감옥, 공식적으로는 '제1군사교도소'로 불리는 이 시설은 수도 외곽 산자락에 자리잡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아사드 정권은 이곳에서 약 10년 넘게 산업적 규모의 고문과 처형을 감행했다. 수감자들은 대부분 반체제 인사, 평화 시위 참가자, 군 탈영병이었으며, 일부는 단순히 비판적인 인물과 SNS 친구를 맺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단 3일 만에 600명 처형"
2023년 3월, 사이드나야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 처형이 벌어졌다. 당시 수감 중이던 압델 모네임 알카이드(37)는 "3일간 매일 밤 200명씩, 총 600명을 교수형에 처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아사드 정권이 아랍연맹 복귀를 위한 외교 협상에 속도를 내던 시기와 맞물린다. 반란이 실패했다고 판단한 몇몇 아랍 국가들과 서방은 아사드와의 협력 복원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 붕괴 이후 드러난 진실은 국제 사회의 심각한 판단 오류를 보여준다. 아사드 정권은 교도소 내 처형 명단, 이동 기록, 사망진단서 등 세부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관해 왔으며, 이는 나치 독일이나 구소련과 유사한 방식의 국가 폭력을 연상케 한다고 전 미 국무부 전쟁범죄 대사 스티븐 랩은 말했다.
사이드나야의 전 수감자들은 도착 직후 벌어지는 이른바 '환영 폭행'을 회고한다. 구타, 성적 학대, 손목을 뒤로 묶고 천장에 매달린 채 전기 고문을 당한 사례도 다수다. 수감자들은 바닥이 넘쳐흐르는 화장실 물을 마셔야 했고, 식량은 하루 쌀 한 컵이 전부였다. "우리는 25명이었지만, 결국 8명만 살아남았다"는 증언도 있다.
감옥 내에서는 정기적인 처형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수감자들은 셀 안에서 목격하거나, 숨이 끊어질 때의 질식 소리를 들으며 경험했다. 간혹 목에 밧줄이 감긴 채 시신이 운반되기도 했다.
2011년, 다마스쿠스의 시 공무원이던 무함마드 나이페는 정부의 지시로 정체불명의 시신들을 야간에 묻는 작업에 동원됐다. 시신은 냉장 트럭에 실려 왔고, 대부분 고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후 시신 매장은 다마스쿠스 북부 쿠타이파 외곽의 공터로 옮겨졌고, 위성사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곳 매장지는 2014년부터 2019년 사이 1.4배 확장되었다.
이곳에서 시신을 옮기던 러시아 군 통신 장비도 발견됐고, 이는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의 폭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새 정부는 구 정권의 반인륜 범죄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으며, 유엔 및 독립 조사관의 현장 접근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매장지 발굴, DNA 감식, 관련자 색출과 같은 진상규명은 기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과제다. 또한, 구 반군 세력 일부의 전쟁범죄 여부에 대한 조사 가능성도 새로운 정치적 긴장을 불러올 수 있다.
수학 교사 출신으로 5년간 사이드나야에 수감되었던 모하메드 이브라힘은 최근 자유인이 되어 감옥을 다시 찾았다. 그는 자신의 셀을 지목하며 "그날의 고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다시 꿈에서 깨어날까 봐 잠이 두려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