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0 08:48 AM
By 전재희
의료비 상승과 정부의 지출 억제 사이에 끼인 보험사들, 실적 전망 줄줄이 철회
한때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각광받던 미국 건강보험업계가 월가에서 외면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유나이티드헬스그룹, 센틴, 휴마나 등 대형 보험사들이 잇달아 실적 가이던스를 철회하며, 투자자들의 신뢰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의료비 상승과 정부 보조금 삭감이 동시에 덮치며, 업계는 구조적인 전환기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과거 건강보험은 급성장 산업은 아니었지만, 메디케어·메디케이드·오바마케어 등 정부 프로그램의 확대와 함께 예측 가능한 수익을 창출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건강보험사들은 핵심 지표를 잇달아 놓치며 투자자 신뢰를 잃고 있다.
2024년 부진한 실적에 이어, 2025년에도 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다. 업계 1위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은 지난 5월 CEO를 교체하고 실적 전망을 철회했으며, 그 이유로 메디케어 어드밴티지(Medicare Advantage)에서의 비용 증가를 지목했다. 이달 초에는 센틴이 오바마케어(ACA) 가입자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가이던스를 철회했고, 이번 주에는 몰리나헬스케어가 메디케이드를 포함한 전 부문에서의 비용 압박을 이유로 수익 전망을 낮췄다.
여기에 최근 통과된 'One Big, Beautiful Bill(일명 OBBB법안)'이 향후 10년간 1조 달러가 넘는 의료 지출 삭감을 예고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도움이 될 법한 저가 매수 기회로 여길 수도 있지만, 문제는 보험사들이 제시하는 수치에 대한 신뢰조차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즈호 증권의 헬스케어 전략가 자레드 홀츠는 "산업이 급변하고 경영진들이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투자자들이 합리적 판단을 내리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 문제는 보험료 산정의 기초가 되는 여러 가정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입자 수, 건강 상태, 진료 이용량 등 모든 예측이 팬데믹 이후 급변했고, 진료 청구 및 코드 체계 변경으로 수익성이 하락했다. 특히 정부 보험 프로그램은 건강한 가입자는 탈락하고, 병약한 가입자 비중이 커지면서 비용 구조가 악화되고 있다.
메디케이드를 예로 들면, 팬데믹 기간 동안 연방 규제로 인해 각 주정부가 가입자를 탈락시킬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저비용 가입자가 급증했다. 그러나 해당 규제가 해제되면서 수백만 명이 탈락했고, 남은 인구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고비용 가입자들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통과된 OBBB법안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법안에는 메디케이드에 근로 요건 및 자격 재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더 많은 이들이 보험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오바마케어 보조금도 내년부터 축소될 예정이다. 이로 인해 보험사들은 더 작고, 더 병약하며, 더 비용이 많이 드는 가입자 집단을 관리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전직 몰리나헬스케어 CEO 제이 마리오 몰리나는 "보험사들은 수술비, 간호사 임금, 고가의 신약(GLP-1 계열 등)으로 지출이 폭증하고 있지만, 정부에 이러한 비용을 전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며, "이미 의료비가 미국 GDP의 17%를 차지하고 있어 정부의 지불 여력은 한계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부담으로 인해 일부 보험사들은 수익 회복을 위해 점유율을 포기하거나 사업 철수를 택하고 있다. CVS는 보험 자회사 에트나(Aetna)를 오바마케어 시장에서 철수시키며 구조 조정에 나섰고, 주가는 반등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무작정 성장'보다는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을 선호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업계 전반의 고전은 주가에도 반영됐다. 지난 4년간 유나이티드헬스, 센틴, CVS, 엘리번스(구 앤썸), 휴마나 등 대부분의 보험사 주가는 하락세를 기록했다. 유일하게 시가총액 증가를 이룬 시그나(Cigna)는 정부 보험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민간 고용주 중심의 상업보험에 집중해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몰리나헬스케어는 현재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오바마케어 등 모든 정부 보험 부문에 진출해 있으며, 이번 주에는 "모든 부문에서 의료비 지출 증가와 정부 지급 축소로 수익에 압박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몰리나 CEO 조 주브레츠키는 "단기적인 수익성 악화는 보험료 수준과 의료비 상승 간의 일시적인 괴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이 괴리가 과연 '일시적'일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팩트셋에 따르면 유나이티드헬스는 2024년 수준의 수익을 2027년까지 회복하지 못할 것이며, 휴마나는 2023년의 최대 수익을 2028년에나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월스트리트는 이제 이 산업이 더 이상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