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3 07:39 AM

그린란드 집착에 무너진 우정...덴마크, 미국 대신 유럽으로 눈 돌린다

By 전재희

트럼프의 그린란드 영유권 주장에 덴마크 여론 급속 냉각...프랑스 등 유럽, 외교·안보적 지원 나서

코펜하겐-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집착이 덴마크와 미국 간 오랜 동맹 관계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2차 대전 이후 가장 친미적 유럽 국가 중 하나였던 덴마크는 이제 미국을 "탐욕스러운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유럽 국가들은 덴마크 편에 서서 외교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왕국 영토의 98%를 차지하는 북극의 전략적 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직후 첫 통화에서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에게 그린란드 영유권을 주장했고, 이후 군사력 행사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린란드

(그린란드 지도는 지장학정 중요성을 나타내준다. 자료화면)

지난 3월 미 부통령 JD 밴스는 그린란드 미군 기지를 방문해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안전하게 지키는 데 실패했고, 미국이 지배하는 것이 더 낫다"고 발언했다.

이에 덴마크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전 국방장관 클라우스 요르트 프레데릭센은 "오랜 우방이던 미국이 단숨에 적으로 바뀌었다"며 "2차대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함께 싸웠던 기억이 아무 의미도 없어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 아들 둘도 미국에 매우 분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호감도 급락...덴마크 국민 41%, 미국을 '위협'으로 인식

여론조사 기관 YouGov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미국에 호감을 갖는 덴마크 국민은 20%에 불과해, 지난해 8월의 48%에서 급감했다. 보수 야당 의원 라스무스 얄로프는 "이제는 미국 여행이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 되었고, 우리 집도 하인즈 케첩 구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린란드 이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덴마크 정부는 트럼프가 여전히 해당 지역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코펜하겐은 그린란드 자치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3월 총선에서 전체 유권자의 74%가 미국의 강경 태도에 반대하는 정당에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덴마크 사회민주당의 크리스티안 마드센 의원은 "그린란드의 미래는 코펜하겐도, 워싱턴도 아닌 그린란드인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유럽 동맹국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누크에 영사관 신설...마크롱 "유럽의 영토는 팔 수 없다"

프랑스는 가장 적극적인 외교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 6월 마크롱 대통령은 프레데릭센 총리와 함께 그린란드를 방문해 투자를 약속하고, 수도 누크(Nuuk)에 프랑스 영사관 개설을 발표했다. 누크에는 지금까지 미국과 아이슬란드만이 외교공관을 두고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린란드는 팔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유럽의 땅"이라며 "이 지역에서 유럽에 던져지는 전략적 메시지를 우리는 똑똑히 인식하고 있다.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덴마크 군사 전문가 피터 비고 야콥센은 "미국이 무력 점령에 나선다면, 덴마크가 실질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며 "개썰매 4대와 민간 경찰 정도밖에 없는 상황에서 항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린란드 야당은 미국과 협력 시사...유럽, 선거 개입 우려

한편, 그린란드의 야당인 날레라크(Naleraq)는 덴마크로부터의 신속한 독립을 주장하며, 미국과의 자유연합협정 체결 가능성을 언급해 주목받고 있다. 이 협정은 현재 팔라우·마셜제도 등이 미국과 맺고 있는 관계 유형이다. 인구 5만6천 명에 불과한 그린란드의 정치 구조상 외부 개입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유럽 각국은 덴마크에 대러 정보전 대응팀을 지원하고 있다.

전 외무장관 예페 코포드는 "트럼프는 결국 자기가 원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었다"며 "그린란드인들은 미국을 두려워하고, 반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유럽 관계자들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린란드를 점령할 경우, 이는 유럽-미국 간 안보 동맹과 통상 관계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 외무장관 마르틴 리데고르는 "그린란드인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강제 합병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단순한 양국 관계 파탄을 넘어 대서양 동맹 전체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