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6 08:19 AM
By 전재희
AI와 안보 위기 활용해 승승장구... 윤리 논란 속에서도 미국 핵심 파트너로 부상
한때 실리콘밸리의 변방에 머물던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가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워싱턴의 권력 핵심으로 도약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WSJ)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공격적인 정부 사업 수주 전략과 지정학적 위기 대응, 인공지능(AI)에 대한 선제적 투자로 회사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주가는 1년 전보다 600% 넘게 급등했다.

팔란티어는 2025년 2분기 매출이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고, 미국 정부와의 계약 매출은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 총 계약 규모는 23억 달러에 달한다. 월요일 실적 발표 이후 주가는 화요일에도 7.9% 추가 상승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실적은 최고, 논란도 여전
팔란티어는 데이터 통합 및 분석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군사 작전, 국경 단속, 헬스케어 규제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전·현직 직원들과 인권 단체들은 회사의 AI 응용이 윤리적 기준을 위배하고 있다며 우려를 제기해 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기술적으로 지원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업을 추진하면서 '시민의 자유'에 대한 원칙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팔란티어는 "원칙에서 물러선 적이 없으며, 문제 제기는 극히 일부 전직 직원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는 투자자 콜에서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되어 유감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실망할 일들이 많을 것"이라며 "비판자들과 이야기하지 말고 주식이나 더 사라"고 말했다.
회사 리더십은 마치 트럼프 대통령처럼 언론을 비난하고 회사를 떠난 직원들을 폄하하는 공격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독일 언론의 질의에 대해선 "무지에 기반한 편향된 질문"이라고 비판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팔란티어는 9·11 테러 이후 카프와 피터 틸(트럼프의 초기 후원자이자 현 부통령 JD 밴스의 정치적 후견인)이 공동 설립한 회사다. 초기부터 안보 및 군사 분야에서 미국 정부와의 협업에 집중해 왔으며, 현재 미국 정부는 회사의 최대 고객이다.
2025년 상반기 정부 수주액은 3억 2,200만 달러로, 트럼프 1기 당시인 2019년 상반기의 약 8,900만 달러에서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미 육군은 팔란티어의 최대 고객 중 하나로, 인공지능 기반 작전 플랫폼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aven Smart System)' 개발 계약을 연장하며 계약 규모를 10억 달러 이상으로 늘렸고, 최근에는 100억 달러 규모의 소프트웨어 통합 계약도 체결했다.
CTO 샴 샹카르는 올해 6월 미 육군 예비역 장교로 임관하면서 회사의 '애국적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카프는 월요일 콜에서 "앞으로 5년간 미국 내 수익을 10배로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으로 회사의 상승세를 이끌었으며,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어떤 위기에도 24~36시간 내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된 회사"라는 이미지가 실제로 계약 수주에 강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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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는 이민단속 관련 데이터를 통합하는 정부 앱 개발 6개월 시범 계약을 수주했으며, 이후 정식 사업화 여부가 논의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13명의 전직 직원은 "팔란티어는 권위주의를 정상화하고 있다"며 공동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팔란티어는 "모든 계약은 시민 자유 및 프라이버시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지 검토하고 있다"며, "데이터 접근 로그를 모두 추적하고 있으며 악용을 방지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자사 소프트웨어가 공권력에 오용되지 않도록 더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결별은 사업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일례로, 일론 머스크와의 갈등 후 트럼프가 스페이스X 계약 축소를 검토했던 선례가 있다. 현재 팔란티어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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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는 지난해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지지했으며, 민주당 기부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화당에도 기부를 늘리며 정치적 행보에 균형을 맞추는 모양새다.
로비 활동도 급증했다. 2019년 연간 140만 달러였던 로비 지출은 2024년에는 580만 달러를 돌파했고, 올해는 더 많은 지출이 예상된다.
팔란티어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대형 계약을 추진 중이다. 의료 시스템 현대화, 네옴(Neom) 스마트시티 건설 프로젝트 등이 포함된다. 과거 인권 문제로 사우디에서 철수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지만, 트럼프의 중동 개발 전략과는 일치한다.
카프는 "우리는 모두의 취향이 아니다"라며, "그게 싫다면 우리와 일하지 마라"고 했다. 논란과 공격적 이미지조차도 팔란티어의 브랜드 전략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