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7 07:12 AM

트럼프 관세 전쟁에 자동차 업계 지형이 바뀐다

By 전재희

생산지 이전·가격 인상 '양면 압박'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관세 전쟁으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이 약 120억 달러(약 16조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이는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산업 피해로, 업계는 앞으로도 장기적인 비용 부담과 구조 전환 압박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무역 수단을 넘어 자동차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현재 미국·일본·유럽·한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생산설비 재편과 공급망 조정을 위해 수년간의 투자를 강요받고 있으며, 이미 막대한 자금을 전기차(EV) 전환에 쏟아부은 상황이라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생산 이전과 가격 인상, 둘 다 '쉬운 길' 아니다

관세에 대한 직관적인 대응책은 두 가지-미국 내 생산 확대 또는 차량 가격 인상이다. 하지만 두 방법 모두 단기간 내 실현하기는 어렵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관세가 산업의 근본을 바꾸기보다는 이미 진행 중인 '현지 생산' 흐름을 가속화하는 데 그칠 것이라 본다. 소비자 취향과 환경규제가 지역별로 급격히 다변화되는 지금, 자동차 산업은 글로벌 통일 모델에서 벗어나 지역 맞춤형 생산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글로벌화와 통합 모델의 시대는 끝나고, 점점 더 지역화된 자동차 산업으로 가고 있다."
- 하칸 사무엘손, 볼보 CEO

도요타, 관세로 30억 달러 영업이익 손실...업계 최다

도요타는 목요일 발표에서 미국의 고율 관세로 인해 올해 영업이익이 약 30억 달러 줄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까지 보고된 자동차 제조사 중 최대 규모의 손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집계에 따르면, 주요 상장 완성차 기업들이 관세로 입은 피해는 총 118억 달러에 달한다.

토요타 LA 다운타운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토요타 매장. 자료화면)

도요타는 내년 3월까지 연간 기준으로 관세로 인한 추가 비용이 95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로 인해 순이익이 44% 급감할 것이라 예측했다.

팬데믹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었던 2020년 이후, 주요 10대 글로벌 자동차 업체(중국 제외)의 연간 순이익은 약 4분의 1 감소하며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가격은 아직 올리지 않았다... 트럼프 트윗도 변수

트럼프 대통령이 3월 25%의 자동차 관세를 발표했을 때 많은 분석가들은 자동차 가격 인상을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제조사가 공식적인 가격 인상은 시행하지 않았다. 재고 소진용 인센티브는 줄었지만, 소비자 수요 위축과 정치적 리스크를 의식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먼저 가격을 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불쾌한 트윗'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 필립 후쇼이스, 제프리스 애널리스트

GM은 2025년 관세 비용으로 40~50억 달러를 예상하며, 이 중 10%는 일정한 가격 정책으로 상쇄할 계획이다. 도요타 역시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의 보완 정책... 관세 피해를 일부 상쇄

한편, 백악관은 자동차업계에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환경 규제 완화를 통해 비수익성 전기차 판매 의무를 줄였으며, 테슬라·리비안 등 전기차 기업들이 판매하던 탄소배출권 매입 의무도 축소시켰다. 포드는 지난주 15억 달러어치의 탄소배출권 매입을 줄였다고 밝혔다.

또한 'Big Beautiful Bill'에 따라 내년부터는 미국산 차량 구매자의 차량 대출 이자 최대 1만 달러를 세액 공제해주는 정책도 시행된다.

"미국에서 만들라"는 트럼프의 메시지... 업계는 부분 수용

트럼프 대통령이 명확히 원하는 대응은 바로 미국 내 생산 확대다.

GM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차량을 수입해오던 기업 중 하나였지만, 현재 인디애나 포트웨인 공장에서 실버라도 및 GMC 시에라 픽업트럭 생산을 늘리고 있다. 캐나다 생산은 줄이고 있다.

닛산은 일본 대신 테네시 주에서 로그 SUV를 확대 생산 중이며, 혼다는 미국 내 공장에 생산조를 추가해 투자 부담 없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조사는 동일 모델을 복수 국가에서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지 이전은 수년의 투자와 재설비가 필요하며, 정치적 환경이 다시 바뀔 위험도 안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기존 생산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압축하는 방식이 될 것"
- 마이크 틴달, HSBC 애널리스트

GM은 한발 더 나아가, 2027년까지 멕시코에서 생산 중인 이쿼녹스·블레이저를 미국으로 이전하기 위해 4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유휴 생산능력을 전환하는 효과도 노렸다.

혼다 역시 일본에서 들여오던 하이브리드 부품을 현지에서 생산하려는 협력사 재정비에 착수했다.

'로컬 생산'은 이미 진행 중인 흐름

현지 생산은 관세 대응뿐 아니라 수요 증가 지역에 대한 자연스러운 전략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며 자동차 산업의 투자 우선 순위로 자리 잡아왔다.

현대차그룹은 3월, 미국에 2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관세 정책 효과로 홍보했지만, 실상 현대는 미국 내 생산 확대가 이미 시급한 상태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중형 SUV인 GLC의 생산지를 유럽에서 앨라배마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이미 대형 GLE는 중국에서 생산 중이며,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시장에서 '이중 현지 생산'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폭스바겐 산하 아우디는 미국 내 생산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며, 백악관과 투자 패키지 협상을 진행 중이다.

"BMW와 메르세데스가 미국 공장을 보유한 반면, 아우디는 그렇지 않아 큰 경쟁 열위에 놓여 있다."
- 패트릭 후멜, UBS 애널리스트

"글로벌 통일 취향은 사라졌다"

로컬 생산은 물류비·관세 회피·환율 리스크 감소 외에도, 규제 및 소비자 맞춤 전략 차원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이미 중국은 전기차가 대세이고, 유럽도 빠르게 확산 중이지만 미국은 내연기관차 선호가 여전하다. 자율주행차도 지역별로 기술 표준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전에는 '전 세계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모델'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그 시대는 끝나고 있다."
- 파비안 브란트, 올리버 와이만 자동차 부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