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8 08:02 AM
By 전재희
미국 반도체 업계의 상징인 인텔이 외부 압박과 내부 분열이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CEO 립부 탄(Lip-Bu Tan)의 퇴진을 공개 요구한 가운데, 탄은 이미 회사의 핵심 전략을 둘러싸고 인텔 이사회와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탄은 올해 3월 CEO에 선임된 이후, 인텔이 자체 반도체 제조 사업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철수할 것인지에 대해 이사회 일부와 입장 차이를 보여왔다.
특히 이사회 의장 프랭크 이어리(Frank Yeary)와는 인텔의 팹(Foundry) 사업을 외부에 분사하거나, 심지어 TSMC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대립해왔다. 이어리는 투자은행 출신으로, 제조 부문에서 손실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이유로 사업 철수를 주장했다.

반면 탄은 제조 부문이 인텔의 핵심 경쟁력이며,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미국 내 반도체 자립을 위해 설비 투자와 기술 역량을 계속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투자 확대·AI 인수 추진도 이사회가 제동
탄은 최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 계획을 추진하고자 월가 투자은행들과 논의했으며, 인공지능(AI) 기업 인수를 통해 엔비디아·AMD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려 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속도 조절을 요구하며 투자 일정을 2026년으로 미루는 등 견제에 나섰다. 인수 논의 중이던 AI 기업도 다른 IT 기업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인텔은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15% 인력 감축과 유럽 신규 팹 투자 취소, 오하이오 공장 건설 속도 조절 등의 조치를 발표하며 긴축에 들어갔다. 탄은 내부 메모에서 "이제 백지수표는 없다. 모든 투자는 경제적 타당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내부 분쟁이 해결되기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목요일 오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탄 CEO의 즉각 사임을 요구했다. 그는 "탄은 중국과의 이해충돌 상태이며, 이 문제의 해답은 사임 외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인텔과 탄에게 큰 충격이었다. 탄은 지난 4월 상무장관 하워드 루트닉과 약 한 시간 동안 인텔 정상화 계획을 논의한 바 있으며, 최근에도 전화 통화를 하고 이달 말 다시 만날 계획이었다.
트럼프의 공격은 탄이 과거 이끌던 Cadence Design Systems가 중국 군사대학에 자사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를 판매한 혐의로 1억 4,000만 달러 벌금에 합의한 사건과, 그의 벤처캐피털이 중국 기업에 투자한 이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상원의원 탐 코튼(아칸소)은 이번 주 초 인텔 이사회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탄의 중국 관련 활동을 조사하라고 요구했고, 오하이오주의 공장 건설이 지연된 데 반발한 버니 모레노 상원의원도 이에 동참했다.
이에 대해 탄은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미국은 내가 40년 이상 살아온 집"이라며 "우리는 행정부와 소통하며 진실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탄에게는 전임 CEO 팻 겔싱어의 유산도 부담이다. 겔싱어는 2024년 대선 직후 물러났으며, 당시 트럼프-제이디 밴스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 중이었다. 밴스 부통령과의 인맥은 인텔이 백악관과의 전략적 교류에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탄은 겔싱어 및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작년 인텔 이사회에서 전격 사임한 바 있으며, 이와 같은 배경이 현재의 복잡한 내홍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