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0 11:50 PM
By 전재희
트럼프 대통령 면담 후 수출 승인 조건...수십억 달러 규모 가능성
엔비디아(Nvidia)와 AMD(Advanced Micro Devices)가 중국에 판매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매출의 일부를 미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이는 수출 승인과 맞바꾼 이례적 합의로, 두 회사와 미 정부 간 관계를 한층 긴밀하게 만드는 조치로 평가된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의 H20 AI 칩 중국 수출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매출의 15%를 받기로 했다. H20 칩에 대한 중국 내 수요를 감안하면, 이는 수십억 달러에 달할 수 있는 금액이다. AMD 역시 MI308 칩에 대해 동일한 조건에 합의했으며, 구체적인 재무 구조와 절차는 현재 조율 중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 9일(일)부터 엔비디아의 H20 칩에 대한 중국 수출 허가를 발급하기 시작했으며, 주말 동안 AMD 칩 수출 허가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H20와 MI308 칩 수출은 미·중 무역 갈등이 고조된 지난 4월 이후 중단된 상태였다.
엔비디아 젠슨 황(Jensen Huang) 최고경영자(CEO)는 이후 양국 정부를 상대로 '매력 공세'를 펼치며 상호 거래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엔비디아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 정부가 설정한 규칙을 준수하며 전 세계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며 "수개월간 H20 칩을 중국에 출하하지 않았으나, 미국이 중국과 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수출 통제 규칙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매출 배분 합의는 황 CEO가 지난주 수요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직후 이뤄졌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술 기업에 대해 새로운 반도체 관세를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먼저 이 합의를 보도했다.
기업이 사실상 '수출 허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드문 사례다. 이번 합의는 해당 칩과 기술이 중국의 AI 생태계 및 군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안보 강경파의 우려 속에 체결됐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H20 칩이 최고 성능 제품은 아니며, 엔비디아가 화웨이 등 중국 기업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엔비디아와 AMD가 받은 수출 허가는 미·중 간 무역 협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발급된 몇 안 되는 사례다. 반도체 접근권은 중국의 핵심 요구사항이자 미국의 중요한 협상 지렛대다.
엔비디아는 2023년, 바이든 행정부가 더 고성능 AI 칩의 대중 수출을 제한한 이후 중국 전용 모델로 H20 칩을 개발했다. 이 칩은 수만 개의 코어를 갖춘 '호퍼(Hopper)'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지만, 최신 '블랙웰(Blackwell)' 시리즈보다는 성능이 낮다. 대규모 언어 모델을 신속히 학습시키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미 학습된 모델이 새로운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추론(inference)' 작업에는 유용하다.
중국 당국은 H20 칩이 환경친화적이지 않으며 보안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이 칩이 원격 제어나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백도어'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AI 기술의 전 세계 수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미국 반도체와 AI 모델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딥시크(DeepSeek), 알리바바 등 주요 AI 모델은 이미 다수 국가에서 확산 중으로, 미국의 기술 경쟁력 제고 압박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