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5 07:34 AM

관세 인상에도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은 이유, '실제 관세율' 낮다는 분석 힘 얻어

By 전재희

새 연구, 수입업체가 실제로 부담하는 관세율이 예상보다 훨씬 낮다고 밝혀

미국이 거의 한 세기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음에도, 물가 상승폭은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만큼 크지 않았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기업들이 아직 추가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러나 최근에는 또 다른 설명이 힘을 얻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수입업자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관세율이 공표된 수치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영국 바클레이즈(Barclays) 이코노미스트들은 미 상무부 인구조사국 데이터를 분석해, 올해 5월 수입업체가 실제로 낸 '가중평균 관세율'을 계산했다. 결과는 약 9%로, 백악관 발표를 바탕으로 추정한 12%보다 훨씬 낮았다. 그 이유는 전체 미국 수입품 중 절반 이상이 무관세였고, 특히 중국처럼 관세율이 높은 국가에서의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바클레이즈 보고서는 "미국 경제가 관세에 크게 흔들리지 않은 이유는 관세에 대한 반응보다, 실제 유효 관세율이 예상보다 더 완만하게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JP모건 역시 6월 실제 관세율이 평균치보다 낮았다고 추정하며, 이는 수입업체들이 낮은 관세 국가나 국내 생산품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낮은 유효 관세율은 소비자물가 상승이 예상보다 억제된 배경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가격 상승을 예측했던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의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LA 인근에 있는 월마트 매장

(LA 인근 월마트 매장. 자료화면)

펜실베이니아대 워튼스쿨 예산모델(Penn Wharton Budget Model)에 따르면, 올해 1~6월 신규 관세로 585억 달러가 걷혔다. 최근 수입 가구 등 일부 품목 가격은 올랐지만, 연초 예상했던 것처럼 물가 전반이 급등하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바클레이즈 분석에 따르면, 6월 관세가 적용된 수입품 비중은 48%에 불과했다. 의약품, 일부 전자제품과 반도체, 그리고 캐나다·멕시코 수입품 상당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주의 관세'에서 면제됐다. 또 미국산 부품이 20% 이상 들어간 제품에도 부분 면제가 적용됐다.

다만 바클레이즈는 향후 실효 관세율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의 면제 조항 상당수가 폐지될 수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에 최대 250%, 반도체에 100% 관세를 예고했다. 또 이달 말부터는 800달러 이하 무관세 반입을 허용하던 '디 미니미스(de minimis)' 규정도 중단된다.

관세율 추정 방식에 따라 다른 수치도 나온다. 예일대 '버짓 랩(Budget Lab)'은 현재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유효 평균 관세율을 18.6%로 계산했다. 이는 5월 말 21.9%에서 다소 낮아진 수치지만, 여전히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바클레이즈는 향후 가중평균 관세율이 현재 10% 수준에서 15%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더 높은 수준을 전망하며, 아직 관세 부담의 본격적인 충격은 앞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세율이 낮게 나타난 이유 중 하나는 기업들이 고율 관세 품목, 특히 중국산 수입을 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장기적으로 가능할지는 불확실하다. 올해 초 관세 부과 전에 재고를 쌓아둔 기업들이 많아 이후 수입량이 감소했지만, 재고가 소진되면 다시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관측이다.

캐나다에서 중고차를 수입하는 배리 로스(Berry Roth)는 작년까지 월평균 1,000대 정도를 들여오다, 올해 1월에는 관세 회피를 위해 1,500대 가까이 수입했다. 그러나 현재 캐나다산 차량 상당수에 25% 관세가 부과되면서, 월 400대 정도로 줄었다. 그는 "재고가 줄면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많은 기업들도 앞으로는 관세를 가격에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플로리다주 월드엠블럼(World Emblem)사는 경찰·소방 등 제복에 부착하는 패치를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수입한다. 란디 카 사장은 관세율 변동이 잦아 당초 가격을 올리지 않았지만, 100만 달러 이상의 관세 부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더 기다릴 이유가 없다"며, 9월부터 아시아산 제품 가격을 6~25% 인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