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6 07:52 AM

이스라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 해외 이주 방안 물밑 협상

By 전재희

리비아·남수단·시리아 등과 접촉...인도주의 명분 내세웠지만 국제법 위반 우려 제기

이스라엘과 미국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수십만 명을 해외로 이주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인도주의적 지원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유럽과 아랍권에서는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트럼프 "가자를 관광지로"...재정착 구상 이어져

WSJ에 따르면,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전쟁 초기부터 팔레스타인인 이주 문제가 공공연히 거론돼왔다. 올해 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를 미국이 접수해 국제적 관광지로 개발하고, 주민 상당수를 다른 지역에 재정착시켜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Photo : 출처 = 베냐민 네타냐후 페이스북)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이후 논란은 잦아들었지만, 이스라엘은 리비아·남수단·소말릴란드·시리아 등 여러 국가와 접촉하며 팔레스타인인 수용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압박...격렬한 갈등도

이스라엘과 미국은 특히 이집트에 대해 시나이 반도 내 재정착을 요구했으나, 이집트는 강하게 거부했다. 가자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압박이 집중됐고, 이 과정에서 양국 관리들 간 고성이 오가는 회의도 있었다고 전해졌다.

백악관 대변인 안나 켈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새로운 정착지를 마련하는 '창의적 해법'을 지지해왔다"며 "다만 하마스가 먼저 무장 해제와 전쟁 종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국가들, 이해득실 계산

남수단·리비아 등과의 협상은 현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들 국가 역시 내전·경제난에 시달리는 상황이라 수십만 명을 수용할 역량이 부족하다. 다만 경제 지원이나 정치적 보상과 맞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남수단은 최근 미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며 일부 미국 내 이민자를 송환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인 수용 논의에도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발적 이주인가, 강제 추방인가"

국제 인권단체와 법률 전문가들은 이러한 계획이 '자발적 이주'로 포장된 사실상 강제 추방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엔과 휴먼라이츠워치 등은 "이는 집단적 인종청소에 해당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과 국제법 전문가들은 "제네바 협약에 따른 강제 이주는 군사적 필요나 민간인 안전을 위한 일시적 대피 외에는 불가하다"며 이번 구상은 국제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딜레마

가자 주민 상당수는 전쟁으로 집을 잃고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사망자가 6만1천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으며, 생존자들 중 상당수는 고통 속에 탈출을 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전쟁 이후 가자 주민의 약 43%가 해외 이주 의향을 밝혔다. 특히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층일수록 비율이 높아, '두뇌 유출' 우려도 제기된다.

이스라엘 극우의 강력한 지지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들, 특히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과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오래전부터 "팔레스타인인의 이주를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벤그비르는 "이는 가장 도덕적이고 올바른 해결책"이라며 "강제가 아니라 다양한 나라로 나갈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올해 2월 국방부 내에 '가자 주민 자발적 출국 관리 부서'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번 계획은 인도주의적 구호인지, 국제법을 위반하는 강제 추방인지에 대한 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동시에 전쟁 장기화로 생존을 위해 탈출을 희망하는 가자 주민들의 절박한 현실이 맞물리면서, 이 문제는 향후 중동 분쟁의 또 다른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