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6 10:32 PM
By 전재희
실리콘밸리의 혁신 엔진이 AI 인재 쟁탈전에 휘말려 흔들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구글 모회사 알파벳 등 빅테크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스타 연구자들을 영입하기 위해 비정통적인 방식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AI 패권 경쟁에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실리콘밸리 특유의 창업 문화와 혁신 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리버스 어콰이어하이어' 확산
최근 빅테크의 주된 방식은 '리버스 어콰이어하이어(reverse acquihire)'다. 과거처럼 스타트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대신 창업자와 핵심 인재만 빼가거나 기술 라이선스를 사들여, 남은 스타트업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인플렉션AI(Inflection AI)의 CEO 무스타파 술레이만을 영입해 자사 '코파일럿(Copilot)' AI 사업을 맡기고, 동시에 6억5천만 달러를 라이선스 비용으로 지불했다. 메타는 올해 6월 데이터 라벨링 전문 스타트업 스케일AI(Scale AI)에 148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신 CEO 알렉산드르 왕과 일부 직원들을 흡수했다.

이 방식은 규제 당국의 인수 심사 부담을 피할 수 있고, 통합 과정의 복잡성을 줄이며, AI 경쟁에서 속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스타트업 직원들, '헛된 희망'에 눈물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실리콘밸리의 기본 질서를 흔든다는 점이다. 창업 생태계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 큰 보상을 얻는다'는 전제 위에서 움직여왔다. 하지만 리버스 어콰이어하이어로 인한 파편화 속에 남은 직원들은 기대했던 보상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잇따른다.
지난 7월 구글이 24억 달러에 흡수한 스타트업 윈드서프(Windsurf)에서는, 인수 직후 사무실에서 눈물을 흘리는 직원들이 있었다. 구글 이전에 오픈AI가 30억 달러 인수를 추진했던 만큼, 남은 직원들은 더 큰 보상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실리콘밸리 생태계 신뢰 위기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되면 창업 생태계 전반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벤처캐피털 디시벨(Decibel)의 창립 파트너 존 사코다는 "실리콘밸리의 전통은 '모두가 함께 성공한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직원들이 실제로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신뢰가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리버스 어콰이어하이어가 장기화할 경우, 모험적 스타트업 참여 대신 대기업 취업이라는 안전한 선택을 택하는 인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빅테크에도 '독이 든 성배' 될 수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단기적 전술은 장기적으로 빅테크 기업 자신들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구글이 2005년 5천만 달러에 인수한 안드로이드, 아마존이 2015년 3억5천만 달러에 인수한 아나푸르나 랩스가 각각 핵심 사업의 토대가 된 것처럼, 전통적 인수 전략이 빅테크 혁신을 이끌어온 역사 때문이다.
결국 빅테크의 '인재 사냥'은 실리콘밸리를 세계 최고의 혁신지대로 만든 기반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빅테크의 무차별 AI 인재 영입 경쟁은 단기적 AI 패권 경쟁에서 유리하지만,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생태계 신뢰 붕괴와 혁신 저하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