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6 07:33 AM
By 전재희
연준 이사 리사 쿡 해임 추진... 통화정책 독립성 근간 흔들릴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 리사 쿡을 해임하려는 시도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수개월 동안 연준에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그는 경기 부양과 주택 구입 여력 확대, 국가부채 이자 비용 절감을 이유로 금리 인하를 압박했으며, 제롬 파월 의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거듭 비난해왔다. 쿡을 교체할 경우 7인 이사진에서 파월 의장을 제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금리 결정을 이끌 수 있는 표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피터 콘티-브라운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연준 독립성이 의미하는 핵심은 통화정책이 현직 대통령의 변덕에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만약 이런 관행이 굳어진다면 지금까지 알던 연준의 독립성은 사실상 끝"이라고 말했다.
쿡의 반발과 법적 공방 조짐
쿡 이사는 "대통령에게 나를 해임할 권한은 없다"며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녀의 변호인 애비 로웰은 "대통령의 요구는 법적 근거와 정당한 절차가 전혀 없다"며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준 이사회 구성원은 법적으로 '정당한 사유(for cause)'가 있을 때만 해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도 연준 이사나 의장을 임기 중 해임한 적이 없으며, 근거 없는 '사유' 주장으로 독립 기관 고위직을 해임한 사례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없었다.
민감한 시점에 벌어진 충돌
이번 사태는 특히 미묘한 시점에 불거졌다. 연준은 올해 들어 다섯 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4.25~4.5%에서 동결해왔다. 대규모 관세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우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지난주 파월 의장은 노동시장 둔화 위험을 언급하며 조만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사임한 아드리아나 쿠글러 이사의 후임으로 측근 스티븐 미란을 지명했다. 여기에 쿡을 해임하고 자신의 인사를 추가할 경우, 트럼프 성향의 표가 늘어나면서 금리 인하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연준 독립성 훼손 우려
전문가들은 이번 시도가 단기적으로 금리 인하 폭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연준 독립성 자체를 흔드는 중대 사건이라고 경고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데이비드 윌콕스는 "중앙은행의 기초를 흔드는 지진과 같은 충격이 될 것"이라며 "국내외 금융시장에 여파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릭 스콧 상원의원은 트럼프를 옹호하며 "미국 가정을 보호하고 연준의 신뢰를 회복하는 옳은 조치"라고 평가했다. 반면 민주당 도널드 베이어 하원의원은 "이는 명백히 불법"이라며 "트럼프는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받은 사람이면서 허위 주장을 근거로 금융 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역사상 전례 없는 시도
연준은 1913년 설립 이후 대통령이 직접 이사진을 해임한 사례가 없었다. 의회는 연준 이사 임기를 보장하며, 해임 사유를 '직무태만이나 위법 행위'로 한정해왔다. 레브 메낸드 컬럼비아대 교수는 "우리는 지금 완전히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미 대법원도 지난 5월 판결에서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적으로 해석한 바 있다. 다만 '정당한 사유'의 정의 자체가 모호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