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7 11:14 AM

중국, 엔비디아 AI 칩 사용 자제 권고...미·중 무역전쟁의 새 전선

By 전재희

중국 정부가 자국 주요 IT 기업들에 미국 엔비디아의 최신 인공지능 칩 구매를 자제하라고 권고하면서 미·중 간 기술·무역 갈등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WSJ)이 17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엔비디아의 RTX Pro 6000D 칩을 사실상 블랙리스트에 올렸다고 사안을 잘 아는 인사들이 전했다. 이 칩은 산업용 AI 응용을 위해 설계된 제품으로, 엔비디아가 지난 7월 베이징에서 공개한 신제품이다.

이번 조치는 중국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입지를 흔드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한 엔비디아를 정면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 "원하면 시장에 남고, 아니면 기다릴 것"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7일 런던 기자회견에서 "어떤 나라가 우리를 원해야만 그 시장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며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더 큰 의제가 있으며, 우리는 인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망스럽지만, 양국 간 갈등이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앤비디아 칩

(앤비디아 칩. 자료화면)

이번 지침은 앞서 중국 당국이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AI 칩 H20 구매를 보안 문제를 이유로 제한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또 중국 반독점 당국은 엔비디아가 2020년 인수 과정에서 자국 독점금지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같은 조치로 인해 올해 엔비디아가 중국에서 RTX Pro 6000D와 H20 등 제품 매출을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오전 거래에서 2.5% 하락했다.

미·중 갈등 속 정치·외교 협상

이번 조치가 발표된 시점에, 스콧 베슨 미 재무장관은 마드리드에서 중국 측과 회담을 열고 틱톡 미국 내 존속을 위한 합의 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금요일 최종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의 전략적 핵심 이익으로 꼽히는 최첨단 AI·반도체 기술 접근권을 확보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미국은 한편으로 중국의 우려를 고려하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기업을 지속적으로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국산 칩 대체 가속

중국은 엔비디아가 판매 가능한 '제한된 수준'의 칩 대신 자국산 칩으로 전환을 독려하고 있다. 국영 통신사 차이나유니콤은 한 데이터센터에 중국산 AI 칩 약 2만3천 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텐센트 등 엔비디아의 오랜 고객들도 국산 칩 사용 비중을 확대하는 추세다.

최근 리창 총리는 서부 지역의 한 데이터센터를 방문해 중국산 칩과 엔비디아의 H20·A800 칩을 비교한 슬라이드를 참관했다. 국영방송은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의 칩이 성능 면에서 엔비디아 제품과 경쟁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중국산 칩은 아직 대량 생산 능력이 부족하다. 첨단 부품과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접근이 미국의 수출 규제로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중국 관리들은 국산 칩이 품질 면에서는 대체가 가능하더라도, 물량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우려한다.

기술 패권 갈등의 장기전

엔비디아 측은 "우리는 가능한 최고의 제품을 제공할 뿐"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엔비디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이 엔비디아 칩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번 사태는 중국이 미국의 '차선책' 기술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동시에,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더욱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