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3 05:35 AM
By 전재희
수십억 달러 규모 엔비디아 AI칩 계약, 투자 조건·안보 우려로 교착 상태
지난 5월 발표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엔비디아 AI 반도체 대(對)아랍에미리트(UAE) 수출 합의가 5개월 가까이 지연되면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일부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 보도했다.
이 합의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對中) 견제를 위한 AI 전략의 상징적 성과로 꼽혔다. WSJ에 따르면, 황 CEO와 백악관 AI 담당 수석 데이비드 삭스는 이 계약을 신속히 추진해 미국의 기술 우위를 과시하려 했지만, 현재까지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합의에 따라 UAE는 미국에 대한 투자를 약속하는 대신, 매년 수십만 개의 엔비디아 칩을 공급받기로 했다. 그러나 몇 달째 UAE의 대미 투자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행정부 내에서도 지연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 열쇠는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에게 있다. 그는 처음엔 합의를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UAE가 미국 내 투자를 확정하기 전까지 칩 수출 승인을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협상을 늦추고 있다.
또한 행정부 내 일부에서는 UAE와 중국의 긴밀한 관계를 우려해, 칩이 중국 AI 산업에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안보적 의심을 제기했다. 이 역시 지연의 배경이 됐다.
엔비디아는 세계 시가총액 1위(약 4조6천억 달러) 기업으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황 CEO와 임원진은 루트닉 장관의 '지연 전술'에 불만을 토로했고, 삭스 등 행정부 인사들도 답답함을 내비쳤다.
루트닉은 일본으로부터 5,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유치하고, 인텔에 90억 달러의 연방 보조금을 투입해 지분을 확보하는 등 '투자 유치형 통상 전략'을 주도해 왔다. 이번 UAE 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중국 칩 수출 라이선스 문제에서도 루트닉과 협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8월 트럼프와 루트닉은 엔비디아에 중국향 H20 칩 매출의 15%를 정부에 납부하라고 요구했는데,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이를 불법적 '수출세'라고 지적했다.
합의 구조: UAE가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투자 등을 약속하고, 그 투자액에 상응하는 규모(1:1 비율)의 엔비디아 칩을 공급받는 방식.
진행 상황: 올해 말까지 최소 10억 달러 규모의 상호 교환이 추진 중이지만, UAE의 칩 대금은 별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협상 혼선이 있다.
칩 최종 사용자: 칩은 주로 중동 내 미국 기업들에 공급될 예정.
안보 우려: 아부다비 AI기업 G42의 참여가 논란. 일부 관계자는 G42가 중국에 칩을 빼돌릴 수 있다고 우려하며, 상무부는 현재 G42 직접 납품을 승인하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두 번째 임기 첫 해외 순방에서 UAE 칩 합의를 치적으로 내세웠고, 양국 간 총 2천억 달러 이상의 협력을 약속했다. 이는 미국 AI 기술을 중국 대안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UAE는 이미 트럼프 일가의 가상화폐 벤처에 투자했으며, 틱톡 미국 사업 지분 인수 컨소시엄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히 얽힌 만큼, 칩 계약 지연은 단순한 무역 문제가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AI 전략, 엔비디아의 글로벌 입지, 미·중 기술 패권 구도와 직결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