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3 10:20 AM
By 전재희
■ 대법원장 출석, 관례 깨고 질의 강행된 국감
13일(현지시간)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은 이례적인 갈등 국면을 연출했다.
원래 조희대 대법원장은 국감 출석 이전에 증인 출석에 대해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대법원장은 국회에서 증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재판 관련 사안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사전 표명했다.
그러나 정작 국감 당일 그는 모습을 드러냈고, 통상 관례대로 인사말만 하고 이석할 것으로 예상됐다. 대법원장은 인사말에서 "재판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는 것은 헌법상 사법권 독립 원칙과 국정감사법 제8조에 위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의 즉각적인 이석을 허가하지 않으며, 증인으로서 질의를 강행하라는 태도를 보였다. 조 대법원장의 출석 거부 입장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는 이날 국감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 추미애 위원장 "국민 알 권리 위해 질의 불가피"
추미애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에게 "대선 개입 의혹 등과 관련된 국민적 의문을 해소하라"며 거듭 답변을 요구했다.
그는 "법사위가 여러 차례 서면 해명을 요청했음에도 대법원장 측에서 아무런 자료 제출이 없었다"며 "사법부 수장이라 해도 국민 앞에서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 의원들이 "사법부 독립 침해"라고 강하게 항의하자, 추 위원장은 "국정감사장에서 퇴장을 운운하는 것은 초등학생 같은 행동"이라며 고성을 주고받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날 여당 의원들은 "법원장도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공직자"라며 "대법원장이 국민의 질문에 침묵하는 것은 책임 회피"라고 비판했다.
■ 조희대 대법원장, 침묵으로 일관..."재판 개입 우려"
조희대 대법원장은 추미애 위원장의 질의에도 고개를 숙이거나 허공을 바라보며 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그를 두고 "침묵으로 일관한 대법원장", "시체 모드로 버틴 사법부 수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조 대법원장은 정회 이후 퇴장하며 기자들에게 "필요한 부분은 마무리 발언 때 밝히겠다"고 짧게 남겼다.
그는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경우 사법부 전체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손상이 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묵언'으로 일관한 것으로 보인다.
■ 여야 정면 충돌..."감금 vs 해명 의무"
여야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국민의힘은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전례 없는 폭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의원은 "대법원장을 감금하고 정치적 심문을 벌이는 것은 헌정사에 오점으로 남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부 수장도 공직자로서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며 "이전 정부의 정치 판결 의혹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맞섰다.
국감장은 고성과 항의, 정회와 재개의 반복 속에서 한동안 혼란이 이어졌다.
■ 법조계 "헌정사 초유의 일"...권력분립 원칙 흔들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헌정사 초유의 사법부 수모"라고 평가했다.
헌법학자들은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행정부에 대한 감시 권한이지, 사법부의 재판 내용에 간섭할 수는 없다"며 "대법원장에 대한 공개적 질의 강요는 삼권분립의 근본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판사는 "정치권이 사법부 수장을 공개 심문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위험한 신호"라며 "조 대법원장의 침묵이 오히려 헌법을 지키려는 선택일 수 있다"고 평했다.
■ 향후 파장과 과제
이번 사태는 향후 국회와 사법부 관계에 중대한 선례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어디까지 사법부를 대상으로 질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법부는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사법부의 독립성과 존엄이 존중받지 못한 채 공개적 압박이 가해진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균형 원칙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은 각 권력이 서로를 견제하되 존중하는 균형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이번 국감은 그 균형이 얼마나 쉽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흔들릴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려는 침묵과, 국민 앞에 해명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압박이 정면으로 충돌한 이날, 국감장은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