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9 06:59 AM

AI 확산의 그늘 - 미국 화이트칼라 일자리 수만 개 '증발'

By 전재희

아마존·타깃 등 대기업 구조조정 확산... 신입과 베테랑 모두 고용 시장서 '자리 잃어'

미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사무직 근로자들에게 보내는 새로운 메시지는 분명하다며 AI확산에 따른 화이트 칼라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 보도했다.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이번 주 아마존은 1만4,000명 규모의 본사 인력 감축을 발표하며, 장기적으로는 화이트칼라 인력의 최대 10%를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UPS(유나이티드파슬서비스)는 지난 22개월간 관리직 1만4,000명 감축을 확인했고, 소매업체 타깃(Target) 역시 며칠 전 1,800명 감축을 발표했다.

X AI 그록
(일론 머스크가 X AI를 소개하고 있다. 자료화면)

이달 초에는 리비안(Rivian), 몰슨쿠어스(Molson Coors), 부즈앨런해밀턴(Booz Allen Hamilton), 제너럴모터스(GM) 등에서도 해고 통보가 이어졌다. 그 결과, 수만 명의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이 정체된 노동시장에 내던져진 상태다.

"당신의 역할은 종료되었습니다"

텍사스 오스틴의 55세 켈리 윌리엄슨은 새벽 5시 30분, 아마존 자회사인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으로부터 "이메일을 즉시 확인하고 오늘은 출근하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자산보호팀 직무는 폐지되었고, 사원증과 노트북은 즉시 비활성화됐다. 회사는 90일의 재취업猶予를 주었으며, 개인 물품은 우편으로 발송될 예정이라는 통보만 남았다.

이처럼 거대 기업들이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대거 줄이면서,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새로운 고용 현실이 미국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연방정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장기 실업자(27주 이상 무직 상태)**는 약 200만 명에 달한다.

AI가 만든 '사무직 구조조정의 시대'

이 같은 해고 물결 뒤에는 인공지능(AI)의 확산이 자리 잡고 있다.
기업 경영진들은 고액 연봉의 사무직이 하던 업무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인건비 절감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과 높은 운영비용이 겹치며 신규 채용도 급격히 위축됐다.

그 결과, 남은 관리자들은 더 많은 직원을 감독하면서도 직원들과의 소통 시간은 줄었고, 잔류 근로자들은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WSJ-NORC 여론조사에 따르면, 올해 **"좋은 일자리를 구할 자신이 있다"**고 답한 미국인은 20%에 불과해, 과거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블루칼라 인력은 '귀한 몸'으로

반면, 현장·전문직 일자리는 오히려 늘고 있다.
기업들은 건설, 의료, 숙박, 제조 분야의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반면, 컨설턴트·관리직 채용은 중단하고, 회계·사기감시 업무를 AI로 대체하고 있다.

33세의 전직 기술영업사원 크리스 리드는 해고 후 10개월간 구직에 실패해 결국 도요타 자동차 딜러 영업직으로 전직했다. 그는 "기술업계에서 10년 일했지만 단 한 곳에서도 채용되지 않았다"며, 퇴직연금과 주식, 심지어 아들과 모은 포켓몬 카드까지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사무직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이제 사무직은 더 이상 '안정된 직업'이 아니다.
인사관리자나 중간 엔지니어 등 한때 고임금·안정직으로 여겨졌던 일자리조차 해고 1순위가 되고 있다.
필라델피아 연준 조사에 따르면, 학사 이상 학위를 요구하는 고임금 일자리일수록 AI 대체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제성장은 이어지고 있지만, 고용 창출은 둔화되고 있으며, 기업들은 채용 기준을 한층 까다롭게 조정하고 있다.

리크루터 모 투엑(Mo Toueg)은 "최근 40대 중년층 구직자가 급증했다"며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하소연이 많다"고 말했다.
오스틴의 헤드헌팅 회사 디렉터 멜리사 마커스는 "지금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달과 별'까지 요구한다"며, 지원자 스펙 일치율이 완벽한 사람만 뽑는다고 설명했다.

신입 세대의 좌절

전국대학고용협회(NACE)에 따르면, 2025년 졸업 예정자들은 전년도보다 더 많은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오히려 채용 제안은 줄었다.

23세의 코비 베이커는 베일러대 졸업 후 뉴욕 시장 진입을 목표로 구직을 시작했지만, "지원 후 아무런 피드백도 없는 '무응답의 벽'만 마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9월 말 고객 서비스직을 얻었지만, "사다리가 발밑에서 사라진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우리 AI는 스스로 코드를 짠다"

컨설팅업체 SBI의 CEO 마이크 호프먼은 지난 6개월 동안 소프트웨어 개발팀의 80%를 감축했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제는 AI가 스스로 파이썬(Python) 코드를 작성합니다."

그는 투자자들이 최대 30%의 인력 감축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경영진이 스스로 물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교육기업 체그(Chegg)도 이번 주 전 세계 인력의 45%(388명)를 감원하며, 학생 질의에 자동 응답하는 AI 모델 중심 구조로 전환을 선언했다.

미국의 고용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AI가 사무실 문을 두드린 순간, 수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남은 이들에게는 더 많은 일과 더 적은 시간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