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7 06:30 AM
By 전재희
사무직 근로자들, '직장 사수'에 매달리다
인공지능(AI)의 확산과 잇따른 구조조정 속에서 미국의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이 심각한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 보도했다.
한때 안정적이라 여겨졌던 사무직 일자리의 안전망이 빠르게 약화되면서, 이들은 지금의 직장을 어떻게든 지켜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WSJ의 보도에 따르면, 미 노동부가 발표한 최근 고용보고서는 이런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전체 실업률은 4.6%로 상승했고, 정보기술·금융 등 사무직 비중이 높은 산업은 10월과 11월 연속으로 일자리가 줄었다.
올해 들어 화이트칼라를 고용하는 다수 산업에서 채용이 둔화된 가운데, 대졸 이상 고학력 근로자의 실업률도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대한 불안은 소비 심리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역사적 저점 부근에 머물러 있으며, 거의 5년에 걸친 지속적 인플레이션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경기 변동에 비교적 둔감했던 대졸자들조차 이제는 예외가 아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들은 잦은 승진과 임금 인상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는 대규모 감원 발표, AI의 부상, 실직자에게 냉혹해진 구직 시장 속에서 "목숨 걸고(job for dear life)" 직장을 붙잡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11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학사 학위 이상을 보유한 미국인들은 향후 1년 내 실직 가능성을 평균 15%로 예상했다. 이는 3년 전의 11%에서 크게 상승한 수치다. 특히 이 집단은 이제 고졸 이하 근로자들보다 실직 가능성을 더 높게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와 완전히 뒤바뀐 인식이다.
대졸 근로자들은 실직 이후 재취업 가능성에 대해서도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이들은 오늘 해고될 경우 향후 3개월 내 재취업할 확률을 평균 47%로 보았는데, 이는 3년 전의 60%에서 크게 낮아진 수치다.
시카고대에서 커뮤니케이션 직무를 맡다 올해 봄 해고된 사라 랜드(42)는 "강한 불확실성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시기 남편 역시 디지털 헬스 스타트업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두 사람 모두 연봉 6자리를 벌던 맞벌이 부부였다.
랜드는 현재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입은 이전 직장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부부는 보모 근무 시간을 줄이고, 연금 납입을 중단했으며, 두 번째 차량도 처분했다.
랜드는 현재의 구직 시장이 2022년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당시 대학은 그녀에게 5만 달러 이상의 연봉 인상과 더 높은 직급을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맥이 없는 지원서는 "블랙홀로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간신히 면접 기회를 얻어도 채용 절차는 수개월씩 걸린다.
기업들이 한 사람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요즘 공고를 보면 세 개의 직무를 하나로 압축해놓은 것 같다"고 랜드는 말했다.
그 결과, 직업 이동성은 현저히 낮아졌다. "예전에는 이직하면 커리어가 한 단계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현상 유지라도 하면 다행일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정부 통계에는 화이트칼라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지만, 일반적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며 대졸 또는 일부 대학 교육을 받은 근로자를 의미한다. 최근 수십 년간 관리·전문직 채용은 다른 직군보다 빠르게 증가해왔다.
표면적으로 보면 대졸 근로자들의 상황은 여전히 나쁘지 않다. 25세 이상 대졸자 실업률은 2.9%로, 1년 전 2.5%에서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임금 또한 비대졸자보다 훨씬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구조적 전환을 체감하고 있다. 팬데믹 직후 기업들은 급증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화이트칼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아마존, UPS, 타깃 등 대기업들은 사무직 감원을 잇달아 발표했다. 일부는 과잉 채용에 대한 조정이고, 일부는 관세 정책과 정부 예산 삭감 등 불확실성에 대비해 채용을 멈춘 것이다.
경영진들은 AI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포드 CEO 짐 팔리는 올해 초 "AI가 미국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문자 그대로 절반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디드(Indeed)에 따르면, 일부 화이트칼라 직군의 채용 공고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12월 중순 기준 소프트웨어 개발직은 2020년 2월 대비 68%, 마케팅 직무는 81% 수준에 그쳤다. 반면 AI 대체가 어려운 의료 분야 채용은 비교적 견조하다.
버닝글래스연구소의 가이 버거 선임연구원은 "뉴스에 나오는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의 불안은 매우 이해할 만하다"며 "해고되면 구직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 거주하는 제임스 라이트(32)는 2022년과 2023년에 식품 대기업 재무직을 옮겨 다녔다. 그러나 최근 업계 전반의 감원과 비용 절감 발표 이후 그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라이트는 인플레이션과 높은 주거비용까지 겹치며 경제 전망에 비관적이다. AI 도구는 현재 업무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 속도로 발전한다면, 내 일자리를 포함해 많은 직업이 사라질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전통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로 여겨졌던 연방정부 직원들 역시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11월 연방정부 고용은 6,000명 감소했다. 이는 10월에 16만2,000명이 급감한 데 이은 것이다. 당시 상당수 직원들이 유예 퇴직 프로그램을 통해 급여 명단에서 제외됐다.
로드아일랜드에서 연방정부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프리실라 클로어는 최근 셧다운 이전까지만 해도 실직 가능성을 2%로 봤다. 셧다운 이후에도 해고되지는 않았지만, 현재는 위험을 약 10% 내외로 평가하고 있다.
그와 남편은 유아 자녀를 둔 상태에서, 의회가 장기 예산안을 통과시킬 때까지 가전제품 구매를 미루고 있다. 보육비, 식료품, 보험료 상승도 체감하고 있다.
클로어는 "화이트칼라가 아닌 사람들보다는 나은 위치에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불안정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