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7 06:41 AM

트럼프, 베네수엘라 제재 유조선 전면 차단 명령

By 전재희

"완전하고 전면적인 봉쇄"... 마두로 압박 수위 대폭 격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드나드는 제재 대상 유조선에 대해 "완전하고 전면적인(total and complete) 봉쇄"를 명령하며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대한 압박을 한층 더 강화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화)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올린 글에서 "베네수엘라는 남미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함대에 의해 완전히 포위돼 있다"며, 이는 베네수엘라 인근 지역에 배치된 미 해군 함정과 항공기, 수천 명의 병력을 지칭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두로 정권이 과거 미국과 연관된 석유·토지·자산을 반환하지 않을 경우 "미군 주둔은 더 커질 것이며, 그 충격은 그들이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 자료화면)

이는 베네수엘라가 과거 미국 기업과 연계된 자산을 국유화한 조치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최근 수주 동안 베네수엘라에 대한 지상 타격 가능성까지 언급해왔다.

봉쇄 범위·군사 개입 수준은 불분명

이번 조치로 실제 몇 척의 유조선이 영향을 받을지, 또 미군이 어느 수준까지 봉쇄 집행에 관여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백악관은 관련 질의에 즉각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발표는 미 당국이 최근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실은 유조선 한 척을 압류한 지 며칠 만에 나왔다. 백악관은 추가적인 선박 압류 가능성도 시사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유조선은 차단 위험을 피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발길을 돌린 것으로 해운 데이터는 보여주고 있다.

베네수엘라 "비이성적 군사 봉쇄... 식민지로 돌아가지 않겠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최근 수년간 이란 및 러시아와 연계된 유조선을 활용해 베네수엘라 원유 거래를 금지한 미국의 제재를 회피해 왔다. 베네수엘라 측은 지난주 유조선 압류와 이번 봉쇄 명령에 강하게 반발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성명에서 "미국 대통령이 전적으로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해상 봉쇄를 강요하며 우리 조국의 부를 훔치려 하고 있다"며 "베네수엘라는 결코 제국이나 그 어떤 외국 세력의 식민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적 봉쇄는 일반적으로 전쟁 행위로 간주된다. 다만 이번 조치는 전면 봉쇄에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갱신한 제재 면제 라이선스에 따라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를 생산·수출 중인 셰브론(Chevron)은 제외된 것으로 해석된다.

셰브론 대변인은 16일 "베네수엘라 내 운영은 중단 없이 지속되고 있으며, 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조선 대기 급감... 1962년 쿠바 이후 첫 봉쇄

해운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주 '스키퍼(Skipper)'호 압류 이후 베네수엘라 항구에 입항을 기다리던 선박 수는 약 45척에서 16일 기준 약 12척으로 급감했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해상 봉쇄를 단행한 마지막 사례는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로 향하는 소련 미사일 반입을 막기 위해 명령한 쿠바 봉쇄였다.

군사력 증강... 항모·전투기 카리브해 집결

이번 봉쇄는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인근에서 논란이 된 마약 밀수 선박 폭격 작전과 군사력 증강을 이어가는 가운데 발표됐다. 미 해군 최대 항공모함인 USS 제럴드 R. 포드호는 지난달 수십 대의 전투기를 싣고 카리브해 지역에 도착했으며, 다른 군함들로 구성된 항모 타격단도 함께 배치됐다.

사진과 비행 추적 자료에 따르면, F-35A 스텔스 전투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HH-60W 구조 헬기, HC-130J 구조기는 푸에르토리코에 전개됐으며, 공중 급유용 탱커 항공기는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이동했다.

의회 전쟁권한 표결 앞둔 시점

이번 발표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행동에 의회의 사전 승인을 요구하는 하원·상원 전쟁권한 결의안 표결을 앞둔 시점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게시글에서 마두로의 "불법 정권"이 "도난당한 유전에서 나온 석유로 마약 테러, 인신매매, 살인과 납치를 자금 조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가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된 마약 밀매 카르텔을 이끌고 있다고 비난해 왔으나, 마두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서반구 전례 없는 조치"... 식량 위기 경고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 베네수엘라는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가 운영하던 석유 프로젝트를 국유화했으며, 이는 장기간의 국제 소송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 그리고 석유 분석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의 토지와 석유를 훔쳤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덴버대의 베네수엘라 경제학자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는 "서반구에서 주요 수출 수입원을 완전히 차단당한 봉쇄를 겪은 국가는 없었다"며, 이번 조치가 인구 2,800만 명의 베네수엘라에서 심각한 식량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클플러(Kpler)는 사이버 공격으로 국영 석유 수출 시스템이 마비된 데다 미 유조선 압류까지 겹치며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은 현재 사실상 교착 상태"라고 평가했다.

해상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베네수엘라 인근 유조선들에는 1,00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실려 있으며, 이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8척이 운송할 수 있는 물량에 해당한다.

베냉 국적의 '볼타리스(Boltaris)'호는 러시아산 나프타 30만 배럴을 싣고 베네수엘라로 향하던 중 주말에 항로를 바꿔 유럽으로 되돌아갔다. 향후 2주 내 베네수엘라 항구에서 원유를 선적할 예정이던 최소 6척의 VLCC 역시 모두 유턴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