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1 02:25 PM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차단, 쿠바를 붕괴 직전

By 전재희

쿠바 노점상
쿠바 노점상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차단, 쿠바를 붕괴 직전으로 몰아넣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쿠바의 노점상. AP)

미국이 베네수엘라 정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값싼 원유 공급에 의존해온 쿠바가 체제 수립 이후 최악의 경제·사회적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이미 식량 부족과 대규모 정전, 인구 유출로 신음하던 쿠바는 이제 생존을 떠받치던 베네수엘라 원유마저 잃을 위기에 놓였다.

미, 제재 유조선 차단... 쿠바의 '생명선' 위협

미국은 최근 제재 대상 유조선을 겨냥한 부분적 해상 봉쇄를 통해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 이 유조선들은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의 약 70%를 담당해왔다. 미 당국은 이미 베네수엘라산 원유 약 200만 배럴을 싣고 가던 유조선 한 척을 압류했다.

베네수엘라 원유 공급이 중단되거나 급감할 경우, 그 여파는 즉각 쿠바를 강타할 것으로 전망된다.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쿠바-베네수엘라 에너지 관계를 연구하는 **Jorge Piñón**은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쿠바 경제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차베스 이후 이어진 원유 동맹... 하루 10만 배럴에서 3만 배럴로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밀착은 1999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 본격화됐다. 당시 쿠바는 의사·체육 지도자·정보 요원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했고, 그 대가로 하루 1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받았다. 현재 그 규모는 3만 배럴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여전히 쿠바 에너지 수입의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자원이다.

쿠바 정보기관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에 깊숙이 관여하며, Nicolás Maduro 정권을 지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별시기보다 더 가혹"... 인구의 4분의 1이 떠났다

쿠바는 1959년 혁명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소련 붕괴 이후의 '특별시기(Special Period)'보다도 길고 가혹하다는 평가다.

  • 2018년 이후 경제 규모 15% 축소

  • 누적 인플레이션 약 450%

  • 암시장 환율: 달러당 450페소 (2020년 약 30페소)

  • 인구의 약 25%인 270만 명 이상이 2020년 이후 해외 이탈

뉴욕 바루크칼리지의 쿠바 연구자인 **Ted Henken**은 "희망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한다"고 말했다.

극심한 생활 붕괴... 굶주림·질병·정전 일상화

쿠바 전역에서는 하루 18시간 이상 정전이 반복되고, 연료 부족으로 전력망이 붕괴 직전에 놓였다. 쓰레기가 치워지지 않아 뎅기열·치쿤구니야 등 모기 매개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으며, 물 공급이 끊겨 씻거나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조차 어려운 지역도 적지 않다.

사회권리관측소에 따르면,

  • 국민의 90%가 극심한 빈곤

  • 70%는 하루 한 끼 이상을 거름

  • 78%가 해외 이주를 희망

아바나에서 활동 중인 시민운동가 **Manuel Cuesta Morua**는 "이것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고 말했다.

디아스카넬 "경제 효율 없이는 주권도 없다"

쿠바 대통령 **Miguel Díaz-Canel**은 최근 의회 연설에서 "심각한 물자 부족에 직면해 있다"며 "거시경제 안정 없이는 주권도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민간 부문 확대에는 여전히 정치적 저항이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베네수엘라 원유 공급이 추가로 줄어들 경우, 쿠바의 상황은 **'버틸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워싱턴 아메리칸대의 쿠바 경제학자 **Ricardo Torres Pérez**는 "지금도 최악이지만, 더 나빠질 수 있다"며 "베네수엘라 원유가 더 줄면 쿠바 경제는 지속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압박 속 쿠바의 미래는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고립시키는 동시에, 카리브해 군사력 증강과 마약 밀매 연계 선박 공습 등 강경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 여파는 가장 취약한 동맹국 쿠바에 집중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권을 지키는 데 깊숙이 관여해온 쿠바는 이제 동맹의 붕괴가 곧 자국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기로에 서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압박이 계속될수록, 쿠바의 미래는 한층 더 불확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