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3 08:20 AM
By 전재희
미국에서 자동차 가격 급등이 이어지면서 신차 할부금이 평균 월 750달러를 넘어섰고, 대출 기간이 8~10년에 달하는 초장기 자동차 대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 보도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표준으로 여겨지던 48~60개월 할부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는 평가다.
WSJ에 따르면 미국 내 신차·트럭 평균 가격은 2020년 이후 33% 상승해 올해 가을 처음으로 5만 달러 선을 돌파했다. 팬데믹 이전인 2020년 초에는 평균 3만8,000달러 수준이었다.
펜실베이니아주 글렌 밀스에서 닷지·지프 딜러십을 운영하는 데이비드 켈러허는 "신차 시장에 더 이상 월 300달러 할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 시절은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J.D. Power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신차 평균 월 할부금은 760달러로 추산된다. 높은 물가와 금리가 가계 부담을 키우면서 일부 소비자들은 자동차 할부 연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월 납입금을 낮추기 위해 소비자들은 점점 더 긴 대출을 선택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72개월(6년) 이상 대출이 이미 보편화됐으며, 85~96개월(약 7~8년) 대출 비중도 늘고 있다.
신용평가사 Experian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전체 자동차 구매자의 3분의 1이 72개월 이상 대출을 이용했다. 이는 1년 전의 29%에서 상승한 수치다. 특히 대형 픽업트럭의 경우 100개월(8년 이상) 대출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3만 달러 이하 신차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상장 딜러 체인 소닉 오토모티브의 최고재무책임자(CFO) 히스 버드는 "자동차 회사들이 이 가격대 모델을 내놓지 않는 한, 구매 가능성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 소비자들의 자동차 대출 잔액은 1조6,600억 달러로, 5년 전보다 3,000억 달러 증가했다. 이는 뉴욕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근거한 수치다.
차량 가격 부담이 커지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초소형·저가 차량의 미국 판매를 허용하기 위한 규제 완화 검토를 지시했다. 현재는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미국에서 판매되지 못하는 모델들이 대상이다.
실제 수요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 Ford Motor는 이달 초 소비자들이 고가 옵션 대신 기본형 트림으로 몰리고 있다고 밝혔으며, 엔트리급 매버릭 픽업트럭 판매는 11월에 76% 급증했다.
장기 대출은 월 부담을 줄이지만, 총 이자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예를 들어 5만 달러를 연 5%로 5년 대출할 경우 월 납입금은 약 950달러, 총 이자는 약 6,600달러다. 반면 100개월 대출을 선택하면 월 납입금은 약 600달러로 낮아지지만, 총 이자는 1만1,000달러 이상으로 급증한다.
체이스 오토의 소비자금융 책임자 마이클 더글러스는 "대출 기간을 선택할 때는 월 납입금뿐 아니라 총 소유 비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차량 내구성이 과거보다 개선돼 장기 대출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차값 자체가 급등한 현 상황에서는 이 논리가 설득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텍사스의 자산관리사 스티브 레비(62)는 "졸업하던 시절만 해도 자동차 대출은 최대 48개월이었다"며 "이제는 8년 넘게 빚을 지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은 이제 '차를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빚을 질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