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31 10:25 PM

금·은, 1980년 이후 최악의 하루...트럼프의 연준 지명 여파

By 전재희

금과 은 가격이 하루 만에 폭락하며 1980년 이후 최악의 하루를 기록했다. 월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보로 지명한 케빈 워시(Kevin Warsh)가 인플레이션과 달러 가치에 강경한 시각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 시장의 급격한 되돌림을 촉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 보도했다. 

'디베이즈먼트 트레이드'의 급제동

WSJ에 따르면, 수개월간 금과 은은 중력을 거스른 듯한 랠리를 이어가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달러 가치가 인플레이션으로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은 실물자산으로 몰려들었고 월가에서는 이를 '디베이즈먼트 트레이드'로 불렀다.

투자용 금화와 은화
(투자용 금과 은. 자료화면)

그러나 목요일 밤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Jerome Powell) 의장의 후임으로 워시를 지명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자, 금속 시장의 과열은 급속히 식기 시작했다. 금요일 아침 지명이 공식화되자 달러는 수개월 만에 가장 강한 상승세를 보였고, 귀금속 시장 전반에서 매도 폭풍이 몰아쳤다.

은 31% 폭락, 금도 기록적 하락

은 가격은 하루 만에 31% 급락했다. 이는 1980년 3월, 헌트 형제(Hunt brothers)의 은 시장 장악 시도가 붕괴됐을 때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2월물 은 선물은 전날 트로이온스당 114달러를 웃돌던 수준에서 78.29달러로 주저앉았다. 하루 낙폭만 35.747달러로, 불과 지난해 중반 은 1온스 가격에 맞먹는 수준이다.

금 역시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근월물 금 선물은 11% 급락한 트로이온스당 4,713.90달러로 마감하며, 달러 기준으로 사상 최대의 일일 하락폭을 기록했다. 이는 1980년 1월 이후 가장 가파른 하루 낙폭이다.

'매파' 연준 기대가 만든 반전

시장 참가자들은 워시가 인플레이션 억제와 통화 신뢰 회복을 중시하는 매파 성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무질서한 완화 정책으로 기울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자산운용사 SLC 매니지먼트의 데크 멀라키(Dec Mullarkey)는 "워시는 강경한 통화정책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며 "통화 가치 훼손에 대한 위험이 낮아지고, 보다 질서 있는 통화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주식시장과 산업 전반으로 확산

귀금속 급락은 광산주를 강타했고, 주식시장 전반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500(S&P 500) 지수는 0.4% 하락했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79포인트(0.4%) 내렸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0.9% 떨어졌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조정을 과열된 시장의 '리셋'으로 본다. 급등한 금·은 가격은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나 자동차 부품 업체 같은 산업 수요자들의 비용 부담을 키워 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금속 모두 1월 전체로는 여전히 큰 폭의 상승세를 유지했다.

누구도 설명 못한 변동성

시장 내부에서도 정확한 원인 규명은 쉽지 않다. 월말 차익 실현에 나선 단기 자금, 급락에 대비한 은행들의 헤지 거래가 매도세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매가 원인이라는 해석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귀금속 거래 플랫폼 불리언볼트(BullionVault)의 애드리언 애시(Adrian Ash)는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며 "20년 동안 시장에 있었지만 이런 장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과 은만 보면 개인 투자자 광풍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같은 날 구리 같은 산업 금속도 급락했다는 점이 단순한 개인 투자자 문제는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남은 질문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금속 시장 특성상, 대형 투자자의 움직임 하나가 극단적인 가격 변동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도 혼란을 키운다. HSBC의 멀티에셋 전략가 맥스 케트너(Max Kettner)는 "유동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가격이 포물선처럼 올랐다"며 "무엇을 근거로 올랐는지부터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급락은 귀금속 시장이 얼마나 얇은 유동성과 기대 심리에 의존해 왔는지를 드러냈다. 워시 지명을 계기로 통화 정책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금과 은의 '믿음의 랠리'는 단 하루 만에 가혹한 현실 점검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