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8 10:10 PM

중국 '아줌마 투자자'들이 만든 금·은 광풍... 불안한 세계가 자산 흐름을 바꾸다

By 전재희

세계적인 금·은 가격 급등의 배후에는 중국의 평범한 가계 투자자들, 이른바 '아줌마 투자자(auntie investors)'가 자리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글로벌 불안정성과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 가계가 대거 귀금속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용 금화와 은화
(투자용 금화와 은화. 자료화면)

베이징의 고등학교 교사 로즈 톈(Rose Tian·43)은 최근 춘절(Lunar New Year)을 앞두고 베이징 최대 규모의 보석 시장 가운데 하나를 찾았다. 팔찌, 목걸이, 반지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는 수년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수천 달러 상당의 금(gold)을 사 모아 왔다.

"경제와 국제 정세가 너무 불안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금을 산다."

중국, 글로벌 금 수요의 핵심 축으로 부상

중국은 최근 전 세계 금·은 투자 열풍을 주도하는 핵심 국가로 떠올랐다. 소규모 개인 투자자들이 금과 은을 대거 사들이면서 가격은 사상 최고치(record highs)까지 치솟았고, 이후에는 극심한 변동성(volatility)에 휘말렸다.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에 따르면, 중국 투자자들은 2025년 한 해 동안 금괴와 금화(gold bars and coins) 약 432톤(metric tons)을 매입했다. 이는 전년 대비 28% 증가한 수치로, 전 세계 해당 수요의 약 3분의 1에 달한다.

부동산 침체·저금리... 갈 곳 잃은 가계 자금

중국 가계가 금으로 몰리는 배경에는 선택지의 부재가 있다. 부동산(property market)은 침체에 빠져 있고, 국내 주식시장(stock market)은 변동성이 크며, 은행 예금 금리(interest rates)는 낮다. 이 때문에 중년 여성 투자자부터 Z세대(Gen Z)까지 금을 가치 저장 수단(store of value)으로 선택하고 있다.

중국 내 금·은 가격은 국제 기준 가격(international benchmarks)보다 웃도는 프리미엄(premium)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수요가 그만큼 강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앱으로 ETF 사고, 실물 금 '콩'도 인기

많은 투자자들은 위챗(WeChat)이나 알리페이(Alipay) 같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금 상장지수펀드(gold exchange-traded funds, ETFs)를 커피 주문하듯 손쉽게 매입한다. 중국 금 ETF는 지난해 사상 최대 자금 유입(record inflows)을 기록했고, 상하이선물거래소(Shanghai Futures Exchange)의 금 선물(futures) 거래량도 연간 최고치를 경신했다.

실물 금을 선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보석 시장과 금 매장에서는 금괴(gold bars)와 1그램짜리 '금콩(gold beans)'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 금콩은 유리병에 담겨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급등 뒤 급락... 투기 광풍 경고

올해 초 금·은 랠리는 약달러(weak U.S. dollar), 국채 금리 하락(lower bond yields), 각국 중앙은행(central banks)의 매입 확대가 맞물리며 가속화됐다. 레버리지(leverage)를 활용한 공격적인 투자도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그러나 1월 30일, 시장은 급반전했다. 금과 은 가격은 수십 년 만의 최대 일일 낙폭(largest daily losses)을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케빈 워시(Kevin Warsh)를 차기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의장으로 지명하겠다고 밝히자 달러가 강세를 보였고, 귀금속 가격은 급락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하마드 후세인(Hamad Hussain)은 "이제는 안전자산 수요라기보다 투기적 광풍(speculative frenzy)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중국 소셜미디어(social media)에는 고점에서 진입했다가 손실을 본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일부는 "부추처럼 잘려 나갔다"고 표현했다.

조정 국면 속 '관망' 우세

중국 일부 은행들은 최근 증거금(margin) 요건을 강화해, 귀금속 매입을 위해 빌릴 수 있는 금액을 제한했다. 가격 조정 이후 베이징 톈야 보석 시장(Tianya Jewelry Market)을 찾는 발길은 늘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신중하다.

매장 직원 홍먀오(Hong Miao)는 "가격 하락으로 금괴 판매는 조금 살아났지만, 전반적으로는 관망(wait-and-see)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허난성(Henan province)에서 온 관광객 자페이(Jia Pei·30대)는 금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판단해 최근에는 은(silver)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몇 년 전 사둔 금 50그램을 지난해 여름 가격이 두 배로 뛰었을 때 매도했다.

"이제는 은을 모으고 있다"며 그는 말했다. "가격이 떨어져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 가계의 불안과 선택은 단순한 개인 투자 행태를 넘어, 글로벌 귀금속 시장의 방향을 좌우하는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