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2 07:40 AM

"현금 좋아한다"... 도이체방크(Deutsche Bank), 엡스타인과 '늦은 결별' 전말

By 전재희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Deutsche Bank)가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과의 거래를 2018년 말 종료하겠다고 통보하고도, 실제로는 2019년 7월 체포 직후까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12일 보도했다.

11일 공개된 미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 DOJ) 문건에 따르면, 은행은 2018년 12월 엡스타인에게 계좌를 정리하겠다고 통보했지만, 이후에도 수개월간 현금 인출과 송금 등 거래를 처리했다.

5만 유로 '대형권' 현금 주문

로이터가 보도한 문건에 따르면 2019년 4월 9일, 엡스타인은 유럽 여행을 앞두고 5만 유로(약 5만9천 달러)를 '큰 액면가 지폐'로 요청했다. 도이체방크는 이를 신속히 준비했다.

도이체 방크
(도이체 방크, 위키)

같은 날 이메일에서는 엡스타인 측이 총 7,500유로를 현금으로 뉴욕의 보좌관에게 페덱스(FedEx)를 통해 보내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관계자 스튜어트 올드필드(Stewart Oldfield)는 거액 인출 사유를 묻는 동료에게 "제프리는 파리에 아파트가 있고, 그곳에 갈 때 현금을 갖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마감 시한 넘긴 계좌 운영

도이체방크는 2018년 12월 21일 서한을 통해 2019년 2월 28일까지 계좌를 정리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법무부 문건에 따르면 이후에도 여러 계좌가 운영됐다.

  • 파리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딜러 보증금 1만 유로 반환 지원

  • 6천 유로 이상 환전 주문 최소 2건

  • '서던 트러스트 컴퍼니(Southern Trust Company)' 계좌에서 2019년 3월 한 달간 3천만 달러 이상 자금 이동

  • 2019년 4월 항공업체들에 10만 달러 이상 송금

2019년 5월 3일 기준 엡스타인은 최소 9개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잔액은 총 177만6,680달러였다.

체포 직후 "지금도 고객인가?" 긴급 이메일

엡스타인이 2019년 7월 6일 체포되자, 당시 자산관리 책임자였던 파브리치오 캄펠리(Fabrizio Campelli)는 부하 직원에게 "그가 지금도 고객인지 확인해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후 내부적으로 "URGENT!!! Need to close accounts ASAP"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발송되며 28개 계좌 정리가 지시됐다. 일부 계좌에는 잔액이 거의 없었으나, 규제당국이 범죄 은폐에 활용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 '버터플라이 트러스트(Butterfly Trust)' 계좌도 포함돼 있었다.

2020년 1억5천만 달러 합의

도이체방크는 2013년 엡스타인을 고객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는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가 그의 계좌를 종료한 이후였다.

2020년 도이체방크는 뉴욕 금융감독당국과 1억5천만 달러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하며, 엡스타인과 5년간 거래한 사실을 인정했다. 감독당국은 은행이 모델 등에게 지급된 자금에 대해 충분한 검증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은행 측은 이번 보도에 대해 "2013년 엡스타인을 고객으로 받아들인 것은 잘못이었으며, 내부 절차의 약점을 인정한다"며 "그와의 관계를 깊이 후회한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 거래 내역에 대한 추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피해자와도 별도 합의

도이체방크는 엡스타인 피해자들과도 7,500만 달러에 합의했다.

엡스타인은 2008년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13개월 미만의 형기를 복역했다. 이후 2019년 재체포됐으며, 구금 중 사망했다.

이번 문건 공개는 대형 금융기관의 고객 심사 및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왜 즉각적인 단절이 이뤄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