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3 09:19 PM

미 대법원 판결에 무역전선 이동...베이징, 협상 지렛대 확보 판단

By 전재희

중국 정부가 미·중 무역전쟁의 새 국면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부과 권한을 제한하면서, 베이징은 향후 정상회담에서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 보도했다. 

대법원, '비상권한 관세' 제동...트럼프 전략 핵심 무기 약화

미 연방대법원은 백악관이 비상권한을 '백지수표'처럼 활용해 전면적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무역 전략의 핵심 축을 사실상 무력화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실효 관세율은 기존 32%에서 23%로 낮아질 전망이다. 이는 Capital Economics(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분석이다.

행정부는 판결 직후 임시 대안으로 15%의 글로벌 관세를 적용했지만, 중국에 대한 상대적 관세 격차는 크게 축소됐다.

중국, '최대 수혜국' 부상

관세 부담이 완화되면서 중국은 이번 판결의 최대 수혜국으로 평가된다.

미중 경제
(미중 무역전쟁. 자료화면)

중국산 제품과 베트남·태국 등 아시아 경쟁국 간 관세 차이가 줄어들면서,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동남아로 이전할 유인이 약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최근 전자제품 수출이 급증한 베트남과 태국 경제에 직접적인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체 수단 모색...안보·무역조사 활용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수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항공기 엔진 등 첨단 기술 수출을 차단하거나, 1기 행정부 시절 체결된 무역합의 이행 여부를 문제 삼아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현재 행정부는 해당 무역합의에 대한 법적 조사를 진행 중이다. 만약 중국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오면, 새로운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관세를 재부과할 가능성도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제이미슨 그리어는 방송 인터뷰에서 "이미 중국에 대한 관세와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대체 수단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3월 말 정상회담 앞둔 베이징, '관세 철회' 최우선

중국 상무부는 공식적으로는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활용해 중요한 양보를 이끌어낼 기회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의 1차 목표는 지난해 가을 한국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년 휴전을 연장하는 것이다. 동시에 기존 관세 철회와 미국의 첨단 기술 수출 통제 완화를 요구할 계획이다.

'선물 보따리' 준비...보잉·대두·에너지 카드

중국 협상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성과를 돕기 위해 상징적 성과를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Boeing(보잉) 항공기 대규모 주문

  • 미국산 대두 및 에너지 수입 확대

  • 2020년 외교 갈등 속 폐쇄된 휴스턴·청두 영사관 재개

다만 전 미 상공회의소 고위 인사인 마이런 브릴리언트는 "큰 쿠키가 아니라 부스러기 정도"의 합의에 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진짜 목표는 '대만'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민감한 의제는 Taiwan(대만) 문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통화에서 대만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무기 판매 계획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무기 패키지는 정상회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보류된 상태다.

중국은 필요할 경우 무력 통일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미국은 1979년 제정된 대만관계법에 따라 대만 방어용 무기를 제공할 의무가 있지만, 군사 개입 여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중국 정책 자문가들은 미국이 대만 지원을 축소할 경우 미 국채 대규모 매입 등 보다 큰 경제적 패키지를 제안하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맹 신뢰 흔들릴까

조지타운대 교수이자 전 백악관 국가안보 고위관료인 에번 메데이로스는 "행정부가 전략 경쟁에서 발을 떼는 결과가 될지 여부가 핵심"이라며, 대만 정책 변화는 동아시아 동맹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후버연구소의 매트 터핀은 "대통령이 수세에 몰렸다는 인식이 과장됐을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 직후 강경 발언과 대체 관세 수단을 즉각 발표한 배경도 이 같은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전장은 이제 법정 판결 이후 새로운 협상 국면으로 이동했다. 관세가 아닌 지정학과 안보가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