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5 07:39 AM

중동 긴장 속 '안전자산' 논쟁 재점화...달러·채권·금 어디가 가장 안전한가

By 전재희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다시 한 번 '안전자산(safe haven)'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안전자산들의 움직임이 예전처럼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어떤 자산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인지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금 가격은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달러는 다시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5일 보도했다. 

이러한 상황은 시장이 기존의 안전자산 개념을 다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달러, 이번 위기에서 가장 강한 성과

로이터에 따르면, 이번 주 들어 가장 좋은 성과를 낸 안전자산은 달러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약 1.5% 상승했다. 특히 전통적인 안전통화로 꼽히는 스위스 프랑과 일본 엔화 대비해서도 달러가 강세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4월 관세 충격으로 주식시장이 하락했을 때 달러가 약세를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시장에서는 장기 달러 자산보다 단기 달러 현금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이 에너지 순수출국이라는 점도 달러 강세를 지지하고 있다. 중동 긴장으로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는 미국 경제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 외환 전략 책임자 제임스 로드는 "달러는 일정 부분 안전자산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미국 정책 불확실성이 달러의 전통적인 안전자산 특성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채는 안전자산 역할 약화

한편 정부 국채는 이번 지정학적 충격 속에서도 전통적인 안전자산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이 국채를 '위기 피난처'로 보기보다는 인플레이션 전망에 따라 거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국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와 국채 발행 증가에 대한 우려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로존 기준 금리 역할을 하는 독일 10년물 국채(Bund) 금리는 이번 주에만 약 14bp 상승했다. 이는 국채 가격이 하락했다는 의미다.

라스본스(Rathbones)의 채권 책임자 브린 존스는 "독일 국채는 전통적으로 안전자산이지만 정부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장기물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금,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신뢰도' 유지

금은 여전히 강력한 안전자산으로 평가된다.

금 가격 변동추이
(지난 10년간 금가격의 변동 추이. LSEG)

금 가격은 이번 주 큰 폭의 하락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이는 투자자들이 다른 자산에서 발생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일부 금을 매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금 가격은 이번 10년 동안 약 240% 상승하며 강력한 상승세를 이어왔다.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부채 증가 등 구조적 요인도 금 수요를 계속 지지하고 있다.

또한 포트폴리오 내 금 비중이 여전히 낮다는 점도 상승 여력을 시사한다. 스테이트스트리트에 따르면 글로벌 펀드 자산 중 금 ETF 비중은 아직 1% 미만으로, 전략적 권장 비중인 5~10%보다 크게 낮다.

스테이트스트리트 골드 전략 책임자 아카시 도시(Aakash Doshi)는 "올해 금 가격은 4,000달러보다 6,000달러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높다"며 "현재 가격이 이미 5,000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엔화·스위스 프랑도 시험대

전통적인 안전통화로 꼽히는 일본 엔화와 스위스 프랑도 이번 위기에서는 예상보다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주 들어 스위스 프랑은 약 1.2%, 일본 엔화는 약 0.8% 하락했다.

다만 일부 투자자들은 여전히 엔화를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인트제임스플레이스 최고투자책임자 저스틴 오누에쿠시는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보면 일본 엔화가 여전히 보호 역할을 할 수 있는 통화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금리 인상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어 엔화 전망에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총리 사나에 다카이치가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프랑 역시 스위스 중앙은행(SNB)이 지나친 통화 강세를 억제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골드만삭스 전략가 테레사 알베스는 "SNB의 개입 가능성이 높아지면 현재 충격 상황에서 프랑의 안전자산 특성도 약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방어주도 기대만큼 효과 못 보여

일반적으로 시장이 불안할 때는 유틸리티나 필수소비재 같은 방어적 주식이 상대적으로 선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러한 패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주 S&P 유틸리티 지수는 약 1%, 필수소비재 지수는 약 2.8% 하락했다. 반면 S&P500 지수는 거의 변동이 없는 수준을 유지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유틸리티와 필수소비재 섹터는 각각 3%, 4.5% 하락하며 STOXX600 지수의 3% 하락보다 더 부진했다.

이는 전쟁 이전부터 인프라와 산업 등 '실물 자산(hard assets)' 투자 테마가 이미 강세를 보였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템플턴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제임스 브리스토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현재 금리 수준에서는 전통적인 방어주에 투자할 때도 가격 대비 가치를 훨씬 더 엄격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