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5 06:04 PM

조용히 쌓여온 위험...미국 사모펀드 시장에 '부실 경고음' 확산

By 전재희

미국 금융시장에서 사모펀드를 둘러싼 위험 신호가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둔화 가능성이 겹치면서, 지난 10여 년간 급격히 팽창한 사모펀드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사모펀드가 운용하는 기업 인수, 사모대출(private credit), 부채 재구조화 시장에서 부실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조 달러 규모로 커진 사모펀드 산업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은 지난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성장했다. 연기금, 대학 기금,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낮은 금리 환경에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며 대규모 자금을 유입한 결과다.

시장조사업체 프레킨(Preqin)에 따르면 전 세계 사모펀드 운용 자산은 약 10조 달러 규모로 확대됐다. 이는 2010년대 초반 대비 수 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의 상당 부분은 저금리 환경에서 가능했던 레버리지 전략에 기반했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할 때 대규모 차입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금리가 낮을 때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금리가 급등하면 기업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재무구조가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뉴욕 증권 거래소
(뉴욕증권거래소. 자료화면)

최근 미국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좀비 기업' 증가와 차입 부담

현재 사모펀드가 보유한 포트폴리오 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높은 부채와 낮은 현금흐름에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사실상 "좀비 기업" 상태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2020~2021년 초저금리 시기에 인수된 기업들이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다. 당시 사모펀드는 높은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공격적인 인수 거래를 진행했는데, 현재는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로 인해 기업 가치가 크게 떨어진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차입금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재융자(refinancing)나 구조조정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사모대출 시장도 위험 요인

사모펀드 산업과 함께 급격히 성장한 분야가 바로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이다. 이는 은행 대신 사모펀드나 자산운용사가 기업에 직접 대출을 제공하는 구조다.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규모는 약 1조5천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은행 규제가 강화된 이후 사모대출이 기업 금융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과 시장 전문가들은 이 시장의 투명성이 낮고 위험이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일부 사모대출은 기업의 재무 상태가 악화된 이후에도 대출 조건을 변경하거나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뒤로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경우 실제 부실이 금융시장에 반영되지 않고 장기간 누적될 가능성이 있다.

출구 시장 막히며 '자금 회수' 어려움

사모펀드 산업의 또 다른 문제는 투자 회수(exit)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한 뒤 기업공개(IPO)나 다른 펀드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금리 상승과 증시 변동성 확대 때문에 IPO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그 결과 사모펀드들은 보유 기업을 장기간 매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수익을 실현하기 어려워지면서 펀드 만기 연장이나 '세컨더리 거래'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운용사는 기존 펀드의 자산을 새로운 펀드로 이전하는 '연속 펀드(continuation fund)' 구조를 활용해 시간을 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자산을 이전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

현재까지 사모펀드 부실이 금융위기 수준의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다. 사모펀드는 은행과 달리 직접적인 예금 기반 금융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이 완전히 제한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사모펀드의 주요 투자자는 연기금과 보험사 등 장기 투자 기관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경우 연금 수익률과 보험사의 자산 건전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사모대출 시장이 은행 대출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는 만큼, 기업 금융 경색이 발생할 경우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규제 논의 본격화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미국 금융당국도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사모펀드의 수수료 구조와 이해상충 문제를 점검하는 규제를 추진한 바 있다.

또한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와 국제기구들은 사모대출 시장과 레버리지 구조가 금융 안정성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사모펀드 산업이 심각한 붕괴에 직면할 가능성은 낮지만, 향후 몇 년간 투자 손실과 구조조정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에 급격히 팽창한 사모펀드 산업이 고금리 환경 속에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