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4 08:03 AM
By 전재희
이란과의 군사 충돌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 경제가 오히려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며 '에너지 패권'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정책이 의도와 달리 글로벌 경제 구조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평가다.
WSJ에 따르면,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반은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유럽 등 해외 주요국은 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력, 에너지 절약 조치 등으로 경기 전망이 악화되고 있다.
씨티(Citi) 이코노미스트들은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0.4%포인트 하향 조정한 반면, 미국은 0.1%포인트 감소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유럽이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에너지 순수입에 의존하는 반면, 미국은 오히려 에너지 순수출이 GDP의 0.2%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은 중동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글로벌 공공재'로 간주하며 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1990년 걸프전 당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세계 석유 공급의 안정성을 이유로 군사 개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 수입이 거의 없다"며 해협 봉쇄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입장을 드러냈다. 대신 "필요한 국가는 미국에서 석유를 구매하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국제 질서 유지자가 아니라, 에너지를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자기 이익 중심 국가'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는 셰일 혁명과 정책적 지원에 기반한다. 국내 석유·가스 생산 확대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인프라 구축을 통해 미국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핵심 공급자로 자리 잡았다.
현재 미국은 옥수수·대두보다 LNG 수출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영화·TV 콘텐츠 수출의 두 배에 달하는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EU)의 LNG 수입 중 57%를 미국이 공급하고 있어, 에너지 의존 구조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를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사태 이후 해당 국가의 원유 통제력을 확보해 쿠바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도 언급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이 무제한적이지는 않다고 지적한다. 비용 경쟁력 문제와 민간 생산자 통제의 어려움, 그리고 에너지를 '무기화'할 경우 거래국들이 대체 공급원을 찾을 가능성 등이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에너지 분석가 필립 벌레거(Philip Verleger)는 "진정한 지배력을 가지려면 낮은 비용이 필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란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글로벌 경제 질서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에너지 수출국으로서 상대적 이익을 얻고 있는 반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구조적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
향후 호르무즈 해협 재개 여부, 이란 정권의 변화, 그리고 미국의 에너지 전략 지속 여부가 글로벌 경제 흐름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