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7 07:28 AM
By 전재희
미국 오피스 부동산 시장이 사실상 '헐값 매각' 국면에 들어섰다. 덴버에서 워싱턴 D.C.에 이르기까지, 개발업자들은 문제가 생긴 오피스 타워를 과거 가치 대비 최대 90% 이상 할인된 가격에 사들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 보도했다.
미국의 침체된 오피스 시장에서는 현재 일부 빌딩이 90%가 넘는 가격 하락을 기록한 채 매물로 나오고 있다. 시카고에서는 부동산 개발업자 마크 칼라브리아(Marc Calabria)가 48만5,000제곱피트 규모의 오피스 빌딩을 4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이 건물은 10년 전 6,810만 달러에 거래됐던 자산이다.
덴버에서는 개발업자 애셔 러자토(Asher Luzzatto)가 차압 절차를 거친 뒤 덴버 에너지 센터(Denver Energy Center)를 530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 두 개 동으로 이뤄진 복합 건물은 2013년 1억7,600만 달러에 팔린 바 있다.
연방정부의 대표적 임대인 역할을 하는 미국 총무청(GSA)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총무청은 지난달 94만제곱피트 규모의 건물을 주거 전환 개발업자에게 2,400만 달러에 매각했는데, 이는 몇 년 전 가치에 비하면 극히 일부 수준이다.
건물주들과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대출기관들은 코로나19 이후 반등을 기대하며 수년간 오피스 타워를 버텨왔다. 그러나 이제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매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고용주와 직원들이 근무 시간을 재택과 사무실로 나눠 쓰는 형태가 정착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높은 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자산가치가 낮아지고, 매수자들의 차입도 더 어려워졌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러자토는 "부동산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고통 수준에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오피스 빌딩이 헐값에 팔리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례는 대체로 품질이 낮거나 입지가 좋지 않은 건물들에 집중돼 있다. 뉴욕의 최상급 지역이나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인기 높은 지역에 위치한 고급 오피스 타워의 경우, 임대료를 올리고 수익성 있게 매각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오피스 매매는 이 섹터의 가파른 하락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 분석업체 그린스트리트(Green Street)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품질이 높은 자산조차도 평균적으로 정점 대비 약 35% 가치가 떨어졌다.
반면 매수자들은 미국 주요 도시의 오피스 타워를 맨해튼의 침실 3개짜리 콘도 한 채 가격 수준에 사들이고 있다. 이런 부실 자산 매각은 새로운 소유주들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재개발 구상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시카고에서 칼라브리아가 매입한 건물은 도시형 농장과 교육센터로 전환될 예정이다. 그는 팜제로(Farmzero)와 협력해, 재배용 조명과 수경재배 기술을 이용해 연간 수백만 파운드 규모의 딸기, 토마토, 상추, 허브 및 기타 채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칼라브리아는 "이처럼 고통스러운 가격에서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변화를 감당할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바닥 수준으로 떨어진 매입가는 오피스를 주거용으로 바꾸는 전환 속도도 높이고 있다. 급락한 가격에 건물을 확보한 개발업자들은 이제 중정을 새로 내거나 층 구조를 다시 짜는 등,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 변경도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됐다. 더 높은 평가가격에서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었던 사업들이 가능해진 것이다.
데이터업체 렌트카페(RentCafe)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미국 전역에서 9만 가구가 넘는 아파트가 오피스 전환 프로젝트 과정에 있었으며, 이는 1년 전보다 28% 늘어난 수치다. 뉴욕시의 노후 건물들이 가장 앞서고 있지만, 세제 혜택과 기타 정부 인센티브에 힘입어 시카고와 워싱턴 D.C.에서도 유사한 프로젝트가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부동산 데이터업체 MSCI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파산 절차를 통해 경매에 부쳐졌거나 차압 및 채권자 압류를 통해 매각된 부실 오피스 빌딩은 20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4년의 133건에서 증가한 수치다. 이들 자산의 거래 규모는 총 52억 달러였다.
이번 조정은 오피스 소유주들과 대출기관들이 수년간 이 섹터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끝에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소유주들은 추가 자본을 투입했고, 대출기관들은 반등을 기대하며 만기를 연장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이들이 가치가 예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대출기관들은 점점 더 상환을 요구하거나 자산을 처분하고 있다.
이는 팬데믹 기간 더욱 심화된 오피스 시장의 긴 하락세가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MSCI의 임원 짐 코스텔로(Jim Costello)는 "코로나19라는 충격이 닥친 지 6년이 지났다"며 "하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가치 있던 자산을 포기하고 손을 들기까지는 그 정도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고 말했다.
MSCI는 올해 첫 두 달 동안 부실 오피스 매매 규모가 8억8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5% 증가했다고 밝혔다. 많은 은행과 기타 대출기관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재무상태를 보강하고 부실 대출에 대비한 충당금을 쌓아두면서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왔다.
상업용 모기지담보증권(CMBS)으로 자금을 조달한 부실 오피스 빌딩을 관리하는 특별관리인들도 매각에 나서고 있다. 도시형 농장으로 바뀔 예정인 시카고 빌딩을 매각한 CW 자산관리(CW Asset Management)는, 비어 있는 건물의 재산세와 공공요금, 기타 유지비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에 낮은 매각가가 정당화된다고 설명했다.
가치 하락은 단순히 원격근무에 따른 수요 약화 때문만은 아니다. 건물주들은 공실을 다시 채우는 데 드는 높은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대규모 중개수수료와 세입자 유치를 위한 각종 인센티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향후 오피스 사용 방식 자체를 어떻게 바꿔놓을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급격한 할인은 도심뿐 아니라 교외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뉴마크 그룹(Newmark Group)은 지난 2년 동안 텍사스 교외의 오피스 빌딩 5개를 팬데믹 이전 가치보다 50% 이상 낮은 가격에 매각했다. 매수자들은 이 건물들을 철거하고, 더 수요가 높은 산업용 공간 등 다른 용도로 개발했다.
부실 오피스 자산의 주요 매수자 가운데는 신용 투자 중심의 운용사로, 한 위기 영역에서 다른 위기 영역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전략으로 알려진 크로스 오션 파트너스(Cross Ocean Partners)도 포함돼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미니애폴리스, 텍사스주 오스틴, 보스턴 일대 등에서 부실 오피스 자산의 부채와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7억5,000만 달러 규모 펀드 조성에 착수했으며, 이 가운데 첫 3억 달러를 이미 모집했다.
이들의 전략은 급격한 할인 가격에 자산을 확보하고, 기존 임차인들로부터 들어오는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수익성을 따지는 데 있다. 오피스 수요가 약한 상태로 남더라도, 이미 들어와 있는 임차인들의 임대료 수입만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기관투자자들은 대체로 부실 자산 투자에서는 물러나, 가장 회복력이 강한 시장의 최상급 빌딩들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그 대신 고액 자산가들이 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최근 워싱턴 D.C.의 94만제곱피트 규모 GSA 건물을 매입한 호세인 파테(Fossein Fateh)는 데이터센터 투자자로, 자신이 공동 설립한 듀폰 패브로스 테크놀로지(DuPont Fabros Technology)가 디지털 리얼티(Digital Realty)에 76억 달러에 매각되면서 큰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그는 이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할 계획이며, 수영장을 넣거나 층 중앙에 아트리움을 만들어 창문을 확보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런 건축적 개조 작업에는 수억 달러의 비용이 들어갈 전망이다. 파테는 "매입 가격이 이렇게 낮지 않았다면 이 거래는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