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2 07:06 AM

미·이란, 전쟁도 평화도 아닌 교착 상태...호르무즈·핵 프로그램 놓고 이견

By 전재희

미국과 이란이 수년간 양측을 괴롭혀 온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외교적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양측은 전면전 재개를 원하지 않지만, 평화 합의에 이를 만큼 가까워진 것도 아니다. 현재의 충돌은 전쟁도 평화도 아닌 '회색지대'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휴전은 두 번째 달에 접어들고 있다. 산발적 폭력은 이어지고 있지만, 휴전 기간은 앞서 벌어진 교전 기간에 거의 맞먹을 정도로 길어졌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 어느 쪽도 핵심 요구에서 물러설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휴전은 생명유지 장치에"..."완전한 승리" 압박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월요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이란과의 휴전이 "생명유지 장치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박하겠다는 목표에서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미국이 갈등에 지치거나,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압박을 받아 물러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압박은 없다"며 "우리는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영상 메시지
(트럼프 대통령. 자료화면 )

반면 이란은 자신들이 충돌의 승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 정권은 유지되고 있으며,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도 여전히 위협으로 남아 있다는 입장이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Mohammad Bagher Ghalibaf) 이란 고위 관리는 X를 통해 "우리 군은 어떤 침략에도 합당한 대응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상호 봉쇄가 교착의 핵심...호르무즈 해협이 최대 쟁점

양측은 전투를 재개하는 대신 서로의 봉쇄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항구와 선박에 대한 미국의 금수 조치를 강화했고, 이란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직 미국 중동정책 담당 관리이자 현재 애틀랜틱카운슬(Atlantic Council) 소속인 앨리슨 마이너(Allison Minor)는 "현재 남은 선택지는 모두 나쁜 선택지뿐인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이 신속히 교착을 끝내려 한다면 핵심 목표를 완화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외교적 낙관론이 있었다. 미국 관리들과 협상 관계자들은 양측이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 수 있는 기본 합의 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다시 약해졌다.

협상에 정통한 인사들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의 향후 관리 방식과 이란이 핵 활동 및 핵 인프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제한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미국과 이란의 입장 차이는 여전히 크다.

이란 제안, 핵 양보보다 제재 완화와 해협 통제에 초점

이란의 최근 제안은 워싱턴이 요구하는 장기간 핵 프로그램 중단에 대해 유연성을 거의 보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란은 핵 문제를 전쟁 종식의 다른 조건들이 합의되고 이행된 뒤에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란은 조기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개방은 점진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에는 이란 봉쇄 해제를 더 빠르게 진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란 관리들은 해협 통과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이란이 일부 역내 국가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이 과정에서 통행료나 이른바 전쟁 배상금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란은 전쟁 종식을 레바논 내 지속 가능한 휴전과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 같은 연계를 거부하고 있다.

중국 변수와 미국 내 정치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베이징이 교착 상태에 빠진 이란과의 외교 협상에서 출구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이란 에너지의 주요 구매국으로, 테헤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만 중국의 협조에는 별도의 대가가 따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교착 상태를 끝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선 통행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 재개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더 강경한 인사들은 이란과의 군사 충돌 재개까지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해외 군사 개입에 회의적인 공화당 인사들은 경제 불안과 여론 악화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종료를 신속히 선언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워싱턴의 일부 페르시아만 동맹국들 역시 미국이 충돌을 재개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전술적 성과에도 전략 목표는 미완

중동 경험이 많은 미국 관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전쟁에서 이란 지도부, 방위산업 기반, 해군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전술적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란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포기, 역내 대리세력 지원 중단 등 전략적 목표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백악관은 이란 항구와 상업 활동에 대한 봉쇄가 미국에 협상 지렛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란의 공개적 강경 발언 뒤에는 경제적 재앙 직전에 놓인 정권이 출구를 찾고 있다는 판단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교착 상태는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백악관이 핵심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합의에 만족할 수도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움직일 수단은 군사력뿐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수전 멀로니(Suzanne Maloney)는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계속되는 '림보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는 "워싱턴과 테헤란 모두 전쟁 자체로 달성하지 못한 최대주의적 목표, 또는 그에 가까운 목표를 협상 과정을 통해 이루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