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2 11:38 PM
By 전재희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전쟁 기간 자국 내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본토를 여러 차례 비공개 공습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서방 당국자 2명과 이란 당국자 2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번 공격은 사우디가 이란 영토에 직접 군사행동을 가한 것으로 알려진 첫 사례로, 그동안 미국의 안보 우산에 크게 의존해온 사우디가 역내 최대 경쟁국 이란에 대해 훨씬 더 적극적인 방어 태세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공군의 공격은 지난 3월 말 이뤄진 것으로 평가됐다. 한 서방 당국자는 이를 "사우디가 공격받은 데 대한 맞대응 성격의 보복 공습"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로이터는 구체적인 공격 표적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우디 외무부 고위 관계자는 공습 여부에 대한 논평 요청에 직접 답하지 않았고, 이란 외무부도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번 보도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로 확산됐음을 보여준다.
로이터에 따르면 전쟁 이후 이란은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 모두를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으며, 미군 기지뿐 아니라 민간 시설, 공항, 석유 인프라까지 타격했다. 또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해 글로벌 교역에도 차질을 초래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랍에미리트(UAE)도 이란에 군사공격을 가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우디와 UAE의 움직임은 이란의 공격을 받은 걸프 왕정국가들이 비공개적으로 반격에 나섰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사우디와 UAE의 접근 방식은 다소 달랐다. UAE는 이란에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공개 외교 접촉은 제한적으로만 유지했다.
반면 사우디는 확전을 막으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이란과 정기적으로 접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 외무부 고위 관계자는 "사우디는 지역과 주민들의 안정, 안보, 번영을 위해 긴장 완화와 자제, 긴장 축소를 지지하는 일관된 입장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이란 및 서방 당국자들에 따르면 사우디는 공습 사실을 이란에 알렸고, 이후 집중적인 외교 접촉과 추가 보복 가능성 경고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양국은 긴장 완화에 대한 이해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프로젝트 책임자인 알리 바에즈(Ali Vaez)는 사우디의 보복 공습과 이후 긴장 완화 이해가 사실이라면, 이는 양측이 "통제되지 않은 확전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실용적으로 인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신뢰라기보다 "대립이 더 넓은 역내 충돌로 번지기 전에 한계를 설정하려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로이터가 사우디 국방부 발표를 집계한 결과, 3월 25일부터 31일까지 사우디를 겨냥한 드론·미사일 공격은 105건을 넘었지만, 4월 1일부터 6일까지는 25건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줄었다.
서방 소식통들은 4월 7일 미·이란 간 광범위한 휴전 직전 사우디를 향한 발사체들이 이란 본토가 아니라 이라크에서 발사된 것으로 평가됐다고 전했다. 이는 테헤란이 사우디에 대한 직접 공격을 줄였지만, 이란과 연계된 세력들은 계속 움직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우디는 4월 12일 이라크 영토에서 이뤄진 공격에 항의하기 위해 이라크 대사를 초치했다.
사우디 왕실의 계산은 투르키 알파이살(Turki al-Faisal) 전 사우디 정보국장의 최근 기고문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사우디 소유 매체 아랍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란과 다른 세력들이 왕국을 파괴의 용광로로 끌어들이려 했을 때, 우리의 지도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이웃이 초래한 고통을 견디는 길을 택했다"고 밝혔다.
이는 사우디가 군사적 반격을 감행하면서도 전면 확전은 피하려 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란과 사우디는 중동의 대표적인 시아파·수니파 강국으로, 오랫동안 역내 여러 분쟁에서 반대편 세력을 지원해왔다.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양국은 외교관계를 회복했고,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 후티 반군과 사우디 사이의 휴전도 유지돼왔다.
그러나 이번 전쟁과 상호 공격은 양국 간 데탕트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양국이 비공개 군사충돌 이후에도 외교 채널을 유지했다는 점은, 양측 모두 전면전을 피해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